풍성한 공급자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
저는 성경을 매일 눈에서 띠지 않고 주의해서 듣고 묵상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것 외에 많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범으로 인하며 계속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시간을 쪼개지 않으면 성경이나 책을 읽을 시간은 없을정도로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장거리를 갈때는 운전을 하지 않고 지하철을 타는것이 그 시간에 책을 읽을수 있기 대문입니다.
선교사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준행하느라고 땅 끝까지 가서 하는 일들 중에 저는 한 인물이 대단한 업적보다도 그분들의 태도나 자세에서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모잠비크에서 현재도 하나님의 사역자로 선교사의 모범을 보여주는 하이디 베이커가 쓴 책과 그분을 실지로 보면서 배운 점은 참으로 많습니다. 우선 그 책 제목은 “항상 부족함이 없으리로다(There is always engough)"입니다. 저는 그 책 제목 자체에서도 그분의 주님에게 대한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사역 하는 곳은 제가 듣고 본 나라 중에서 최악으로 열악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책 내용 중에서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불평시간”이 없는 것을 봅니다. 다른 기름부음이 강하고 역사가 나타나는 분 중에서도 그 책에서 풍겨 나오는 이미지가 마지막에 좋으신 하나님을 찬미한다고 해도 과정가운데서 불평의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하면 그 책을 읽고 누가 과연 주님의 증인이 되고 싶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따라가면 마치 지옥으로 끌려가는 사람같은 인상이기 대문입니다.
하이디 베이커가 있는 곳은 정말 미국 선교사가 그것도 중류층이상의 박사학위 소유자가 살아간다는 자체가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하이디는 자신은 최고로 좋아하는 곳에 있다고 하며 그 아내를 지켜보는 남편도 그 아내를 감탄스러워 했습니다. 같은 선교사로써 그것도 자신의 아내가 감탄스럽다는것은 우리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들의 과정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듣고 본 사람 중에 최고의 영성의 소유자이며 물론 박사학위도 있지만 그 사역에서 사랑의 최고의 박사학위가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존경하는 의사선교사로서 우리에게 한 영혼을 어떻게 존중하며 사랑하는지를 가르쳐 준 생 폴브랜드도 인도의 열악한 곳에서 한센환자들을 치료하고 그들을 정형외과의사로써 처음 수술을 성공한 사람이면서 그 책 내용에서 인도의 열악함의 불평목소리나 하나님은 돈을 주지 않아서 궁상스럽게 만든다는 이미지도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의 책도 자세히 읽으면서 선교사로써 아니 하나님의 사람으로써의 태도를 많이 배웠습니다. 그도 중국의 선교문을 열었던 하나님의 사람으로 중국에 가기 전에 하나님께 공급받는 연습과 흔련을 스스로 하는것을 보았습니다. 그 훈련이 되었기에 당시에 모든 선교사들이 내지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교통이 좋은 곳에 몰려있는데 허드슨테일러만 내지 깊숙이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지금처럼 은행이 바로바로 송금을 할수 있던 시대가 아니었을 때도 그가 보여준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는 감동적이었습니다.
한번은 어떤 부자가 많은 유산을 그에게 선교헌금으로 주었을때 기뻐하기 보다는 오해려 무릎이 약해질까 봐 염려했다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에 관하여 쓴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기도에 관한 어떤 책 보다도 아버지의 기도하는 모습에서 기도를 배웠다.”
무엇보다도 가장 많은 영향을 제게 주었던 모델은 조지뮬러입니다. 저가 선교사역을 시작할 때가 아니었을 때 처음 그의 책을 읽고 그의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가 참 감동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에 관한 책을 처음 30 년전에 읽었고 그후 그가 쓴 책을 몇권 더 읽었습니다. 저는 아직 브리스톨에 가보지 못했지만 금년 가을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그가 남겨놓은 발자취를 보며 그의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린 믿음을 더 배우고 싶습니다.
반면 저가 홍콩에 살 때도 그랬고 말레이시아에서도 마찬가지이고 한국에서 파송한 선교사님들을 옆에서 지켜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십년이 넘게 지켜 보면서 그분들의 기도편지를 읽으면 항상 그분들의 기도편지가 모두 돈에 대한 염려와 그것을 기도해 달라는 데에 집중하는 것을 봅니다. 또한 기도편지의 특징이 하나같이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열악하고 고생하는 곳에서 고역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홍콩처럼 편리한곳에서 필리핀 가정부까지 두고 살면서 그분들의 기도편지 내용은 홍콩은 마치 모잠비크보다 더 열악한곳에서 최고로 고생하는 것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외국 선교사님들이 허드슨테일러도 지금 증손자까지 조상의 뒤를 따라 선교를 하고 있고 예수원에서도 사대째 돌아가신 대천덕신부님의 아들이 하고 있는것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천덕신부님의 아버지가 쓴 “내 사랑 황하를 흘러”에서도 보면 그분은 한 팔이 잘려서 중국에서 그 긴시간 병원으로 수송되는 시간에 통역자가 없이 그 고통스러운 시간게도 통역을 하면서도 그 글에 하나님에 대한 붚평이나 원망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 사건에서 그분은 “주님의 심자가에서의 고난이 어떤것인지 아주 조금 맛보는 시간이었다”라고 표현이 되어 있었습니다.
언더우드의 아들도 한국에서 아버지가 다리를 다쳐 며칠을 장마비에 엠부란스가 자동차도 없던 그 시절에 판자위에 뉘여서 내명이 어깨에 매며 이런 장마 통에 자칫 한명만 잘못 해도 빠질것 같은 순간에도 언더우드는 자신의 고통보다는 한국인들을 배려해주고 고마워 하고 아들과 아내를 웃게 해주는 여유를 보인 것을 아들이 기록한 글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후손은 다시 계속해서 이 주님과 함께 하는 여행을 갈수 있었고 또 가게 되었던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보내셨을 때 홀로 두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모두 가진 주님이 함께 가기에 모잠비크에서 하이디 선교사는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수천 명의 고아를 먹이고 홍수 때는 수만 명의 고아를 먹일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풍성한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홀리네이션스 선교회에서도 늘 보기에 하이디베이커선교사님의 말을 모두 믿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은 우리를 최악으로 몰아 가고 고통을 주고 세상 악한 아버지보다 더 나쁜 아버지로 묘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 말씀이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마치 세상 악한 아버지보다 더 나쁜 것으로 우리를 혹사하게 훈련시키는 분으로 들려집니다.
마7:9-11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면 사람들은 때로 이런 질문을 합니다. 그렇게 헌신되고 그런 오지에 갔는데 왜 하나님이 항상 물질에 궁핍과 어려움을 주시는 것일까요? 저는 그분들의 다른 헌신은 높은점수라도 하나님이 풍성하게 채우신다는 절대신뢰 부분에서 믿지 않기 때문에 그렇데고 생각합니다. 그분들도 서둘러서 떠나기 전에 허드슨 테일러처럼 하나님이 공급하는 훈련을 하고 떠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가 한 사역도 끝없이 한강에 돌 던지는 식으로 많은 돈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단 한번도 약속을 어기신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그것도 모금이나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고 다니지 않아도 말입니다.
이번에도 몽골에 교회를 하나 세우는 계획에 하나님은 우리 선교회에 일번으로 졸업한 올가전도사님을 통하여 러시아에 동시에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리즈 하월즈가 쓴 중보기도라는 책에서도 그가 동전밖에 없는 가운데서도 영국에 신학대학을 세우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가 아프리카 선교사로 갔을대도 다른 초제한 다른 선교사와 달리 그는 밝은 얼굴로 승리하는 모습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 앞에서 보면 문제가 많은것 같으니 언제나 주님이 행하시는 것을 보기 때문에 “근심하는 자 같으니 항상 기뻐하는 자” 가 될수 있으며 세상에 고통 받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부요함을 보여주는 통로가 되어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자”가 될수 있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의 모습으로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것이 우리가 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