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네이션스
칼럼 목록

질병은 누구에게서 온것인가?

마마킴||조회 5,890

질병은 누구에게서 온것인가?

우리 중보 기도팀이 오늘 방문한곳은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이상미집사님이었습니다. 집사님은 신장이 나빠져서 투석하기 위하여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고 있습니다. 폭우가 내리는 오늘 윤권사님이 운전하는 차를 탄 우리는 병원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서 아연 질색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곳에 차량은 우리가 최근에 방문한 일산병원, 명지병원, 강남성모병원, 구리 한양대병원과는 비교할수 없을만큼 차가 이중 삼중으로 주차하고 있어서 우리 차는 주차 공간을 찾을 수가 없을뿐더러 그곳을 빠져 나오는데도 다른 차와 부딪칠까봐 마음이 조릴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차량이 그곳에 몰린 이유는 서울대병원이 다른 병원보다 더 좋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이 더 많이 온다는 것이 이유가 된 것이고 도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고통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 결국 윤권사님은 주차하고 내려올 수가 없어서 우리만 가서 집사님을 위해서 기도하고 윤권사님은 기다려야 했습니다.

매일 치명적인 병에 걸린 수 많은 사람들을 보며 그분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내일은 수술도 못하고 담도암 말기라서 의사가 손을 쓸수 없는 박명순자매를 퇴원시키러 일산병원에 오전에 가야됩니다. 본인은 자신의 병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있기에 그 모든 상황을 이야기 해줘야 하는 현실은 더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괴로운 역할을 전에 에이즈걸린 완자에게 전해 줄때 알프레드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어른거립니다.

박명순자매에게는 저가 이 괴로운 역할을 하지 않아서 감사했습니다. 중국조선족들만 모이는 교회에 구목사님이 이야기 한 것을 제게 알려 주었습니다. 이제 오십밖에 안된 그분은 자신의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더 살고 싶다고 울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상미집사님은 그런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씩씩하게 잘 이겨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다른 암으로 투병하는 분들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와 같이 간 최장로님은 동생이 귀신들린병에서 온전해 졌고 가족이 구원받은 것을 기뻐하며 매일 동생이 더 많이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지내고 있다고 기뻐하는 이야기를 하며 질병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징런;님 자신도 편두선암을 수술 받았고 항암치료를 세 번받고 더 많은 회수를 강권했지만 그 주사를 맞는 고통을 참는 것보다 차라리 천국가겠다고 하여서 거절하니 십년이 넘게 지금도 견딜 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뇨병, 고혈압, 갑상선 약을 계속 복용하다가 동생 때문에 우리와 같이 기도하며 성경을 읽다가 한 달에 일독씩 하면서 모든 약을 다 끊어버렸습니다. 얼굴은 더 환해졌고 배가 고파도 안되고 너무 먹어도 안되는 당뇨병을 가졌던 분이 우리와 같이 금식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권면한 것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권할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기 위하여 택한 길입니다.

어떤 병도 몸에 들어오려고 하면 장로님이 “나는 너를 거절한다, 받지 않는다.” 라고 선포하면 사라지더라고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아내 되시는 정권사님도 위암 수술 , 디스크 수술 두 번을 하였고 위암수술하고 항암제를 써야 하는데 너무나 몸이 약해서 그 치료를 안받으니 오히려 십요년째 지금 살고 있습니다.

저가 옆에서 지켜보면서 항암치료를 받은 모든 분들은 그 치료로 인하여 오히려 치료가 아니고 고통 받으며 죽어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미 항암치료를 많이 받은 분들은 최장로님이나 정권사님처럼 십년 십오년 사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병원마다 넘치는 환자들을 보며 그 고통을 보며 왜 우리는 여지껏 질병이 누구에게서 왔으며 이 질병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적립하지 못했을까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하나님이 병을 고치신다는 대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태도: 치유가 오늘날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는 주장입니다. 그등의 이런 주장은 치유가 기적인데 오늘날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는 이론에 근거합니다. 기적은 사도시대로 끝났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사도가 죽었을 때 신유도 그쳤다는 것입니다.

:

두 번째 태도: 하나님께서 오늘날 특별기도나 특별한 믿음의 행동에 응답하여 치유를 하시지만 그것은 그 문제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뜻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세 번째 태도: 몸에 대한 치유가 모든 하나님 자녀의 법적인 권리이며, 하나님의 자녀는 긔 영을 위해 죄사함을 받는 것과 동일한 근거로 그의 몸을 위해 치유를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첫 번째 태도에서 기적이란 인간의 삶속에 하나님의 활동하심을 말하는데 모든 기도의 응답은 작든 크든 상관없이 다 기적입니다. 이 부분에서 성경은 이렇게 가르쳐 주십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만약 인간의 몸을 새롭게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고후 5:17 말씀에 영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도 지금은 더 이상 아니라고 해야 이 주장이 맞습니다. 이 주장을 한국교회에 강하게 가르치셨던 목사님이 치명적인 병이 걸리자 은밀하게 아무도 모르게 한국교회에 치유가 강하다는 목사님께 기도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태도에서 이 사람들은 치유를 믿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한 치유할 뜻이 있을 때에만 치유하신다고 그들은 믿습니다. 그들은 치유가 하나님의 자나ㅕ에게 속한 것이 아니며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계속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믿습니다. 이들은 구원은 오로지 영혼에만 국한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사 하나님의 신유를 믿는다고 해도 이 부류에 속합니다.

세 번째 태도에서 구속은 치유와 모든 우리를 얽매이는 것에서 해방하는 것이기에 치유는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하는 법적 권리입니다. 우리가 늘 읽는 이사야서의 말씀에서 주님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하였고 우리의 질고를 담당하셨다고 합니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 기록된 말씀을 믿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것과 같은 윈리입니다.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 같이 믿음으로 나음을 입었습니다. 죄는 영의 병이고 질병은 몸의 병입니다.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사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이중사역을 하신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사람의 영혼에 평안을 가져다주고 그들의 몸에 치유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치유는 예수님의 주요한 사역이었고 예수님의 모델을 보고 훈련받은 사도들도 치유가 주요한 사역 중에 하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사역도 이중사역이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우리의 질병을 담당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픈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이 병을 통하여 너에게 주는 교휸을 받을 때가지 잘 고통을 참고 배워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