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 덧입는 능력
눅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이 능력이 없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크리스천으로서 힘 있게 성공적으로 살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능력을 덧입힐 때까지 기다리라고 충고하십니다. 이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을 통하여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생각으로 자신은 죽고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삶, 그 위대한 온유함을 유지하는 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 가르치는 능력, 사랑스럽고 활기찬 믿음, 다른 방언들, 기적들을 행하는 능력의 증가, 영감 혹은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진리들을 깨닫는 능력, 두려움 없는 용기, 그 용기를 지탱하는 힘 이러한 새 힘을 부여받고 사람들의 마음에 구원으로 이끄는 강력한 확신을 심어줍니다.
한 시대에 사도바울 다음으로 부흥을 일으킨 찰스피니의 가르침을 여기에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챨스피니는 변호사였다가 설교자로 바뀌었는데 그의 부흥은 그의 기도에 있었습니다. 그는 새벽 4 시부터 8 시 까지 크게 기도해서 그는 동네 멀리 떨어져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공장이 밀집된 지역에서 설교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피륙 공장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는데 견학 중에 방직기를 돌리고 있는 방을 지나게 되었는데 거기 많은 여인네들이 일하는 모습과 마주쳤습니다. 그들 중, 몇은 찰스 피니를 보고 마주쳤는데 갑자기 그들의 죄된 영혼이 피니에게 느껴졌습니다. 피니가 쳐다보자 심한 동요를 일으키고 실을 끊어트렸습니다. 그녀는 이를 다시 묶으려 했지만 손이 떨리고 있었기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 피니가 쳐다보자 그들은 하나 둘씩 방적기에서 손을 놓고서 작업을 중단했습니다. 그들 중 한명이 무릎을 꿇었고 곧이어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같은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몇분 안에 모든 일손이 멈추었고 방안은 순식간에 눈물과 탄식하는 소리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대 그 공장의 주인이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었는데 그 방을 감독하는 사람이 공장책임자를 데리고 그 자리로 데리고 온 모양이었습니다. 공장주는 상황을 파악한 후 감독관에게 “기계를 멈추세요”라고 말했고 “공장을 돌리는 것보다 여기 있는 분들이 구원받는 게 더 중요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공장주는 “어떻게 하죠? 성경을 배울 큰 방이 있어야 하는데” 하면서 “노새를 넣어둔 넓은 방이 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즉시 노새를 밖으로 내몰고 난 뒤, 공장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그 방으로 불러 모았고 피니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성경말씀을 전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돌아 오는 놀라운 일을 목격했습니다.
다음의 글은 찰스피니가 쓴 내용을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참 희한한 일이지만 위로부터 오는 능력이 실제로 있는 것이고 성공적인 목회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으면서, 교회나 학교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중을 적게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그런 능력은 원래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사도 시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능력으로 옷입는 사람들은 비록 인간적으로는 보잘 것 없더라도 영혼을 살리는 일에 있어 참으로 성공적으로 사역을 수행해 왔다는 사실은 시대를 불문하고 발견되는 진실입니다. 반면에 학교도 많이 다니고 상당히 배웠다는 사람들이 실제 사역에 있어선 무능력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인간적인 교육보다는 성령의 능력을 열 배 정도는 더 강조해야 갰습니다. 그러나 또 실제에 있어서는 인간의 교육이 위로부터 오는 능력보다 더 대접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부분의 신학교에서는 학자를 배출시키지만 그들 대부분은 영적인 힘이 부족한 사람들이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역을 행하는 데 있어 능력을 부여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공부하여 지성을 항상 시키는 데 주력할 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경험들은 거의 도외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교육을 받습니다. 신학 과정에 실제로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동하게 만드는 과정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경험입니다. 신앙은 단순히 이론 체계가 아닙니다. 이 경험의 핵심을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입니다.
교수들은 학자풍에다 글도 잘 쓰고 성경주석서를 잘 이해하는 젊은이들에게 큰 기대를 겁니다. 그러나 이 교육들은 알아야 합니다. 많은 경우 그런 젊은이들이 열정도 없고 기도에 능력이 없으며 간구하고 신음하는 영도 없고 하나님께 매달리지도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기도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교수들은 그저 젊은이의 지성만을 보고서 그들이 사역도 잘하고 크게 쓰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해 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식으로 사람을 가늠하진 않습니다. 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하나님과의 교제를 나누어 갈수 있을 것 같은 젊은이에게 무한한 희망을 품습니다. 그는 가장 고귀한 영적인 재능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거기에 소망을 두는 사람입니다. 그는 매일 기도하고 또한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옷입지 않고선 도지이 살아가지 못할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