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눈과 들을 귀
마13: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막8: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눈과 귀가 똑 같이 주어졌는데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헌 다는 귀가 있다는 두 구절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로 대조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첫째로 우리의 비극은 하나님의 수 많은 약속의 말씀과 이미 주어진 상속이 있는데도 그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것과 또 하나는 읽어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다는데 있습니다.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라는 말씀에서 말은 알아듣는데 말기를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고 말을 다른 의미로 해석을 하는 경우도 봅니다. 그럴 때 전달하는 의미가 전혀 다르게 되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과 다른 해석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일이면 약 십 개국 언어로 통역이 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루는 러시아 어를 통역하는 엘자 전도사님이 제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통역을 하면서 설교 내용에 “바가지를 긇는다” 라는 말씀이 나왔는데 번역을 하기를 설거지 하면서 바가지를 만진 것으로 해석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TV 를 보면서 드라마에서 하는 대화를 들으면서 그 뜻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여 같이 막 웃었습니다.
저가 어떤 분에게 마태복음 6:33 절의 말씀을 읽고 무슨 뜻으로 쓰여 있는지 제게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잠시 후에 그분이 그 말씀의 뜻은 우리가 살면서 우리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라는 뜻이라고 자신있게 대답을 했습니다. 저가 그의 나라는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씀드렸더니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을 읽어도 전혀 다르게 해석을 하면 우리의 믿음에 전혀 어떤 역사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여도 전혀 기도의 응답이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잠28:9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귀를 기우려 듣지 아니하면 기도도 하나님께서 볼 때 가증하다는 것은 너무나 비극입니다. 우리는 기도한다고 했는데 늘 다른 곳에서 헤매이며 “기도해도 소용없던데요” 라고 내뱉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기도인지 불평인지 투덜대는지 한숨 쉬는지 알수 없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편 그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하신 그대로 믿지 않으면 그 주제에 관한 말씀은 읽고 듣고 알지만 전혀 우리와 상관이 없는 그냥 스쳐 가는 말씀일 뿐입니다. 어떤 목사님 사모님이 병에 걸렸는데 이분은 목사님이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것보다 교인들에게 인기가 있게 잘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 사모님과 다른 교인들 중에 아픈 분을 위하여 외부에서 오신 목사님이 기도할 때 다른 교인들은 병이 나았는데 사모님만 전혀 났지를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 목사님과 사모님이 대화를 나누었는데 사모님은 모든 성경의 주제를 놓고 가르쳤는데 “믿음과 신유”라는 부분만은 한 번도 가르친적이 없다고 합니다.
너무나 지성적인 사모님은 “믿음은 바랄수 없는 것들을 믿는다”는것을 이론은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을 들을 수 있는 귀로 듣고 볼수 있는 눈으로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었을때 그의 의로 여겼다는 말씀을 다시 묵상합니다.
롬4:17-22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우리는 요즈음 많은 환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치료하시는 것을 보며 우리의 믿음이 없었던 것을 회개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미 예수님이 채찍으로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는 성경구절을 수없이 들었지만 그것을 보는 눈이 없었고 들을 귀가 전하는자나 듣는자 모드 없었다는것을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사53:4-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진실로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것을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단순하고 순수한 믿음이 있을 때만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믿은대로 되는것을 항상 보며 기뻐하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는것을 기록하였습니다.
엡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