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하고 사는지요?
[요8:32]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다섯 시간에 걸쳐서 한분의 이야기를 오늘 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 하는 분들의 요청을 저는 늘 거절하지 않습니다. 주로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들으면 한 사람의 주제는 거의 항상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것을 봅니다. 오랜만에 만나도 그분의 주제는 바뀌지 않는 것을 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주제는 그 나이만큼 쌓인 쓴 뿌리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그 대상이 거의다가 자신의 가족들에게서 받은 상처 분노 미움 등입니다. 그리고 결론을 지으면서 이렇게 상처를 받고 살았는데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분이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충분히 이백 퍼센트 이해하고 그분의 상처가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데 용서하는 법을 배우면 다른 사람보다도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몇 시간을 하고도 끝이 나지 않고 한 가지만 더 한 가지만 더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 이미 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족에게 원한을 품고 밉고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지 저는 많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더 가슴이 아픈 것인 이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인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바로 진리가 되시며 그 진리를 알 때 우리는 바로 분노와 슬픔과 증오의 감정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이 참 믿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 자유인을 보기가 힘이 듭니다.
같이 호수공원을 걷다가 갑자기 제게 화제를 바꾸어서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한참동안 제게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더니 제가 신은 운동화를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싼 신발을 신으면 신체가 어그러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 먹어야 건강하다고 건강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싼 신발을 신어도 전혀 편하지 않은 느낌이 없이 편하다고 하니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건강에 관한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건강의 첫째 조건은 우리의 마음에 있다고요.
[잠17:22]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우리의 부정적인 생각들은 우리의 뼈로 마르게 하고 병들게 합니다. 저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자동으로 사람들에게 입력이 되고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긍정적이고 감사한 생각은 하나님말씀으로 계속 뿌리가 박혀질 때 자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을 늘 체험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저는 분당 우리 아들에게 가려면 “먼곳에 어떻게 갔다오지?” 그런 생각을 시작해 본적이 없습니다.
마두역으로 걸어가면서 첫째 우리 예뿐 두 아기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떠오릅니다. “귀여운 우리 애기들을 오늘 보겠구나.” 생각을 하며 수서역 까지는 독서삼매에 빠집니다. 성경을 펼쳐 읽기도 하고 주님의 이야기책들을 읽고 가면 한 시간 반이 언제 갔는지 모르게 지나갑니다. 그 다음 분당 선을 갈아타면 거의 서서 가게 되는데 그때는 책을 읽을 수가 없으니까 중보기도 시간으로 기도를 합니다. 많은 전철에 사람들이 보이는것이 아니고 그곳에서도 골방이 되어 주님과의 대화를 나눌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짜증이 나거나 피곤하거나 힘들거나 하는 단어는 거의 사용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해나가니까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는 말씀이 저절로 생활화됩니다. 왜 이렇게 두 번씩 강조 문을 쓰면서 주님은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했을까요? 바로 우리에게 양약이 되어 하나님이 사랑하는 우리가 아플까바 하시는 말씀입니다. 왜 용서를 해야 하나요? 용서하지 못하는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의 심령을 상하게 하고 병을 유발합니다. 붐 내음새를 맡으며 부정적인 우리의 체질을 긍정적이고 소망을 가지고 이 귀한 시간을 아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