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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믿는것과 가슴으로 믿는것의 차이

마마킴||조회 5,508

머리로 믿는것과 가슴으로 믿는것의 차이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직장이 없어서 한숨 쉬던 외국인은 제가 직업을 구했다고 이야기 해 주었을 때 기뻐하고 더 이상 직업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제 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토요일에 처음 제가 직장이 되었다고 했을때 실지로 직업을 가졌고 그 회사를 본 것은 아니지만 제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기에 그는 안심하는 얼굴이었습니다. 처음 그는 제가 그 공장은 어떤 공장이냐 무엇을 제조하느냐 조건은? 등등 물었습니다. 그에게 “가구나 책 등등 대부분 먼지와 냄새가 특징인 다른 공장과 달리 이곳은 식품공장이며 월급을 늦게 주는 적도 없고 직원은 1000 명이나 되는 곳이다” 라고 이야기 했을 때 그 다음부터는 직업에 대한 고민에서 그는 자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월요일에는 직접 공장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공장 위치를 찾아 해매일 필요도 없는것입니다.

그 다음날 교회에 나와서 만일 그가 계속 걱정하고 정말 직장을 믿을만 하느냐 진짜 일을 시작하느냐 계속 묻는다면 그는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제 심사를 언찮게 할것입니다.

히브리서 11 장 1 절의 말씀은 새 번역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는 곳도 있습니다. “믿음은 몹시도 소망하는 것이 마침내 당신의 것이라는 증서와 같다.”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자랍니다. 이 말씀을 듣고 우리 속에서 뿌리가 박히지 않는 한 사람들은 교회 출입은 해도 설사 어떤 봉사와 사역과 목회를 한다고 해도 진정한 믿음의 역사는 그에게서 볼수가 없습니다.

지난주에 김효정집사님은 더 이상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퇴원하겠다고 말씀하셔서 어제 아침에 퇴원해서 댁에서 잘 지내시는지 남편 분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붓기가 갈아않지 않고 변비가 심해서 아직 퇴원을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게 질문이 있다고 간절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권사님, 모든 사람들은 병문안 온다고 와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서 제가 오지 말라고 했어요. 권사님은 초지일관 똑같은데 우리가 믿는 것이 맞죠?”

그 목소리가 여운이 남어서 제 약속을 늦은 시간으로 미루고 이 병원을 찾았습니다. 김집사님의 상태는 더 악화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혼자 간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런 경우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다고 생각한데서 흔들리고 자신도 두려움에 쌓이게 되기가 싶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타인의 치유를 위해서 기도할 때 타인이 믿음을 소유하도록 부여하는데 우리는 단지 길을 안내하는 역할만 할 뿐입니다. 그 가운데서 상대방은 우리를 보면서 과연 우리가 믿은 하나님은 신뢰할만한가 라는 마음속에 질문이 생기며 확고부동한 믿음의 냄새를 맡을수 있을때 상대방도 믿음이 전달되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저도 한 달 전 처음 귀신들린 분이 우리 기도회에 왔을 때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분 손과 발이 무섭게 떨고 있으며 그분의 피부 색깔과 눈동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일으키기 딱 좋습니다. 그 속에서 역사하는 귀신은 우리에게 겁주기 딱 좋습니다. 마치 그분을 위하여 기도하면 혹시 귀신이 우리에게 붙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에 한 영혼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막습니다. 그러나 제 속에서 하나님 말씀은 이렇게 들려 줍니다. “네 속에 있는 주님은 어떤 세력보다 크단다.”:

 

요일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세 번 기도회에 오신 후 그분은 완전히 자유 했고 이번 주 금요일에는 부산으로 돌아가십니다. 제가 또 가르쳐 드리는 것은 어떤 세력보다 크신 주님을 더 확고하게 붙잡을 수 있는 주님의 음성을 말씀을 통하여 늘 읽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김집사님 남편이 백경아 선교사님과의 대화를 제게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쉼터를 짓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고 하여서 그분이 이렇게 대답을 하셨다는것입니다. “그런것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은 것 같던데요. 그리고 아마 이미 끝났다고 하는것 같았어요.”

맞습니다.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현실을 보지 않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풍랑은 안보이고 주님만 보이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제가 믿음으로 사는 삶을 인생전반에서 살면서부터 늘 주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 함이 있는 그 자유를 만끽하고 살아갑니다. 이억이 필요하거나 이천 원이 필요하거나 우리에게는 다르지만 하나님께는 전혀 다른것이 없다는 것을 아니까 현실의 계산을 잊어버리고 살아왔습니다. 정말 단순한 구조입니다. 성령은 제 눈에 현실을 보이지 않는 안경을 씌어 주신 대신 믿음의 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속삭여 주시지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눅8:50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보통때는 길을 걷는데 까지 배웅하던 집 집사님 남편은 저를 지하철역까지 배웅을 하며 믿음의 확신과 주님을 보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금 삼주 째 옷도 못 갈아 있었다고 하며 상태가 더 악화되니까 옷을 바꾸어 입으러 집에 갈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우리 손에 받아든 믿음의 증서를 바라봅니다.

저가 분당에 가서 아들 집에서 돌아오는 전철을 탄것은 아주 늦은 시간입니다. 다른 분이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권사님, 그렇게 바쁘게 살면 마음은 편하지만 육체는 피곤하지요?”

“아니요, 저는 피곤하지 않아요.”

“육체인데 왜 안 피곤해요?”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피곤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말씀은 제 육체를 만져 주어서 진짜로 안 피곤해요.”

“정말이예요?”

사실 저는 안 피곤합니다. 피곤할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너무나 지친 수많은 영혼들을 주님이 가슴아파하며 돌보시는데 조수 노릇을 하려면 제 속에 주님이 주시는 새힘과 기쁨이 없으면 저가 고갈되어 병이 드는것을 알기에 늘 잘 먹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분당에서 일산까지 긴 시간은 성경을 읽고 오는 좋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늘 풍성한 말씀이 제 영혼속에서 떠나지 않게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믿음을 더 견고하게 합니다.

골3:16-17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