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막5: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처음 은주와 의정이의 손과 발을 쓸 수 있고 걸을 수 있게 기도하자고 하니까 의정이가 이렇게 제게 말했습니다.
“그게 하나님뜻이라면요.” 자기 다시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뜻이지.”
이것이 확신 되는데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습니다.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버라지 않으면 아무 믿음의 역사가 일어 날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바라는 소망이 있어야 실상으로 이루어 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믿음에 펌프질을 가했습니다. 우리가 펌프질을 하면서 소망을 늘 불어 넣어 주는 것이 옆에서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6 개 월이 지나고 대굴 대굴 굴러서 이동을 하던 의정이가 앞으로 기어 나올 수 있는 것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소망을 가지고 우리의 믿음의 박차를 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앞으로 기어 나오면 앉을 수 있는 동작이 된다고 영진이를 걷게 까지 만든 엄집사님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대굴 대굴 구르면 머리를 다칠까 바 조마 조마 한데 앞으로 기어 다니니까 훨씬 좋았습니다.
지금은 천국에 가신 안이숙여사가 86 세때 20 대의 목소리로 찬양하는 것을 감동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신사 참배 거절을 하는 명목으로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오니까 머리카락은 다 빠지고 목소리도 아주 가 버렸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다시 목소리를 주시면 천국 갈 때 까지 찬양을 하겠다고 말씀드리니까 목소리를 다시 주셔서 그 연세에 이십대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그 연세에 하루 다섯시간씩 말씀을 전하면서 듣는 우리보다 더 피곤해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담대한 기도를 드리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런 것을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고 불신하기에 일생동안 하나님의 능력을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의정이의 앞으로 기는 동작은 시작일 뿐이고 다음에는 의정이 은주 모두 손으로 무엇을 잡을수 있는 것을 볼 것을 기도합니다.
사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실 때 마다 쓰셨던 말씀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네 믿음이 크도다” “내가 능해 할수 있다고 믿느냐?” 라는 말씀을 하신 것을 읽었습니다.
요즈음처럼 진짜 믿음을 가졌는지 테스트 해 볼 좋은 기회가 없는 것 같습니다. 모두 너무 힘드니까 다들 “가슴 두근 두근 답답 불안” 이런 말들만 합니다. 그래서 저가 아침에는 이런 인사를 했습니다. “오늘도 가슴 조리며 일어나셨습니까? 부르신 부름의 소망이 무엇이며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세요.” 그래서 적어가면서 기도하겠다고 약속들을 하곤 합니다.
주위에 모두 사기가 저하되어서 하나같이 힘들어 하는 사람들만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경기가 침체되어 어려워 할뿐 아니라 또한 여러 가지 질병에 모두 시달립니다.
딤후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라는 고백이 과연 우리의 고백일까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과연 내가 잘 알고 있을까요? 날마다 더 알기를 저도 간절히 소원할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