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사랑을 베푸사
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우리는 다음의 비유를 다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물에 빠졌습니다. 부처나 공자는 어떻게 해서 빠져 나오는 것을 설명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직접 물에 뛰어 들어가 그 물에 빠진 사람을 살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자신이 그 가르쳐 준대로 할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예수님은 잘 아시기 때문에 직접 살리신 것입니다. 직접 이땅에 오셨고 십자에서 죽으심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우리가 가르침을 들어도 할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살면서 이 사실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를 생명의 길로 빠져 나올 힘이 없었던 죄인이 하나님의 어떠한 사랑 즉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힘이 없고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세상에 사는 모든 영혼들에게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구원의 은총에 들어오기 전에 있는 사람들은 특징이 자신의 문제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심한 무기력증과 의욕상실에 걸려서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며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자신의 고통에만 집중이 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그 고통을 잊기 위하여 잠을 많이 자거나 어떤 중독에 빠집니다. 이것은 잠시 잊어버리는 수단이지만 문제와 고통은 더 가중하기에 자존감은 더 낮아지고 심한 우울증과 대인 기피증이 생깁니다.
우리는 이러한 영혼을 대할 때 예수님께서 직접 사랑을 보이신 방법대로 하기 보다는 주로 부처나 공자가 했던 방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편입니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면 된다.” 는 등등을 소개합니다. 그 한 영혼이 자신의 힘으로 우리가 설명하는 그것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잊어버리는 것이 바로 전도와 한 사람을 세우는데 별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렇게 어두움에 쌓여 있는 영혼을 만났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모델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주시자 그 죄 많은 여인은 물동이를 내 버려 두고 즉시 자신이 만난 메시야를 전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요한복음 4 장을 읽으면 많은 교훈을 얻고 어두움에 있는 영혼들을 많이 주님 앞으로 이끌 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선 예수님은 그 여인을 잘 아셨습니다. 그의 고통이 무엇인지 그의 삶이 어떠한지 언제 물을 길러 오는지 정학하게 아시고 그 여인을 찾아가신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그 한 영혼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훈련은 참으로 오랫동안 해야 할 훈련입니다.
한 사람 각자 개인은 살아온 환경이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없듯이 (쌍둥이도 조금씩 다름) 같은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한 집안에서 같은 부모 가운데서 자란 형제들도 각자 다른 것이 부모가 자녀를 동일하게 대하지를 않는 다는 것입니다. 완전하지 않는 부모는 더 편애를 하는 자녀가 있는 가하면 책임만 많이 주는 자녀가 있고 더 너그럽고 관대하게 용서해 주는 자녀가 있기도 하며 더 엄격하게 대하는 자녀가 있기도 하기에 성격형성이 다 다르게 됩니다.
그러면서 한 인격이 형성이 되기에 사람은 일괄적인 통조림을 생산하듯이 같은 내용의 말과 설교로 같은 효과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가끔 길에서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를 집고 길을 걷는 것을 보게 됩니다. 도로는 그분들을 위하여 더 많은 배려가 있어야 안전하게 길을 갈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입장에 맞는 것 만 그분들이 스스로 할 수가 있는 길일것입니다.
각자 개인의 능력도 모두 다르기에 역시 다른 처방을 써야 주님을 더 잘 불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책을 읽는 것을 아주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손에 책이 떨어지지 않고 늘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다른 책도 읽고 책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사람들 중에는 책을 읽는 것이 전혀 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에게 책을 손에 쥐어 주는 것은 전혀 효과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인에게 국적을 초월하고 학식과 관계없고 빈부와 관계없이 만병통치 생명을 살리는 비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묘약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받기 위하여 한 영혼을 향한 “중보기도”의 자리를 무릎이 낙타 무릎이 되도록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 말씀드립니다.
“주여 중보기도를 잘 할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어제밤 김효정집사님의 병상을 찾았습니다. 매주 호전되는것을 볼수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병실에서 걷지도 못하다가 어제는 에레베이터 까지 걸어나와서 우리를 배웅해 주었습니다. 붓기도 많이 갈아낳고 황달기도 많이 눈에서 사라졌습니다. 식사를 통 못하다가 어제 우리가 도착을 했을때는 김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부디 난소암 말기라는 모둔 어두움 세포는 사라지고 새 봄이 오듯이 새 세포가 살아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