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름을 아는 자
시 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하루는 이태영 목사님께서 아버지가 목회하시는 김포성결교회에서 신년부흥집회를 하는데 저희 남편하고 같이 좀 오세요 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에서 모이는 집회는 어떤 집회인지 여쭈어 보았는데 목사님께서도 자세히 내용을 모르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교회의 제직 세미나 같은 모임으로 저녁에는 한 오십명이 모인다고 해서 그런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 아버지 되시는 리요한목사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첫 말씀이 “저는 장로님이 말씀을 전하는줄 알았는데 권사님이 전한다고 하네요.” 그러시면서 제게 본문이나 제목을 물어 보;셨습니다. 그 뉘앙스가 좀 의아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저희 남편이 근무하는 은행으로 전화를 했더니 저희 남편이 저가 아니고 제 아내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며 제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외국인 예배를 마치고 그곳에 도착하니 제가 생각하는 그런 집회가 아니고 10 개의 교회가 연합하여 그 지역의 감찰회가 함께 하는 대 부흥회였습니다. 수요일까지 하는 집회로 저가 첫날 말씀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잠시 후 그곳에 주보를 보니 순서에 여러 목사님 성함이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였고 교회 문앞에 포스터가 붙어 있고 풀랑카드가 걸려 있는 것을 본후 그곳 목사님께 들은 이야기였습니다.
다음 풍경은 더 저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목사님들이 당회장실로 들어오셨는데 그분들의 표정이 이런 중요한 집회에 왠 여자 권사? 라는 표정으로 장로님이라고 들었는데 나중에 권사님이라고 하던데요 하는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막 떨렸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무슨 말씀을 전하나? 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저는 다른 곳에 가서 말씀을 전하게 되면 그 그간동안 기도하면서 성령님께 저가 선택해야 하는 본문, 주제를 여쭈어 봅니다. 어제 주신 말씀이 바로 시편 9:10 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정해질 때 까지 저는 무슨 말씀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를 알지를 못합니다.
저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를 하나님께서 매순간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말씀을 한 시간 십분 동한 전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강조점은 우리 모두가 복음을 전햐는 귀중한 일에 쓰임받기를 소원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번쯤 다 들어본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미국에서 한 흑인이 다른 지역에 여행을 하는 동안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니 그 근처 교회는 모두 백인만 들어갈 수 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예배처소를 찾지 못한 그 흑인은 공동묘지에 앉아서 울면서 예배를 드리니 예수님께서 옆에 앚아 계시면서 나도 들어 갈 곳이 없다고 말씀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생각없이 백인놈들은 나쁘다 라고 우리와 상관없이 스쳐 갔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흑인이라는 차별하는 영혼들이고 우리주위에는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수 많은 강도만난 이웃들이 있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학대 받고 방치된 아이들, 굶주리고 아무도 관심가져 주지 않는 외로운 이들, 무기력증에 걸려 아무것도 할수 없는 상태의 사람들, 반대로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했으나 참된 평안과 안식을 모르기에 끝없는 허기를 채우기 위하여 마귀가 주는 쾌락으로 현실을 도피하는 사람들, 이들 모두 사랑 없어 사랑받기 원하며 상처로 큰 아이는 상처투성이의 어른이 되어 다시 이 악순환을 되풀이합니다.
진실로 이 영혼들을 사랑하며 가던 길을 멈춘 선한 사마리아 인이 되어 있는 것 다 털어 주고도 더 비용이 들면 다시 내며 그렇게 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며 하나님은 잃은 양을 찾는 그 마음을 헤아리는 당신의 자녀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는 그분이 하시는 것을 바라보는 그 영광의 앞자리에 앚아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저는 그분이 하신 이야기의 지극히 일부만 하였습니다. 끝나고 나서 다시 당회장실에서 목사님들과 모였습니다. 한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핵심을 찔러서 마음이 찔렸어요. 우리 교회도 몽골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이 조금 있는데 그들이 가져오는 문제를 듣는것이 사실은 겁이 털겅 났거든요. 그런데 그 문제를 사랑으로 품는 것이 복음을 전하기 위한 축복의 시간이라는 것이 놀라워요.” 다른 목사님이 또 말씀하셨습니다. “저가 그 사역을 해 보려다가 실패했거든요.” 그리고 목사님들은 왜 한시간 이상 더 하지 그렇게 일찍 끝냈느냐고 아쉬어 했습니다.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요즈음은 간증이 없거든요.”
저는 한 말씀만 드렸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무엇을 하려면 버티는 것은 아주 한계가 있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 우리는 날마다 기쁨과 감격의 순간이라는 것을.
이 기쁨과 감격이 없는 사람은 과연 내가 주의 이름을 아는가를 체크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나는 주가 내 기도를 들으시는 살아계신 주님이라는 것을 늘 아는가?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는가? 그러한 주의 백성은 날마다 그분이 하시는 일에 감격하여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시 9: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에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