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노라면
“마마 지금 어디 있어요? 나는 지금 마두역으로 가요” 가끔 이런 전화를 받습니다. 저의 시간이나 상황은 상관없이 외국인들은 미리 약속 없이도 그렇게 만나기를 원하면 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들을 만나줍니다.
오늘은 전에 손가락이 부러져서 수술을 한 라빈다와 같이 라리드가 스리랑카로 돌라가는데 환전을 해달라고 마두역에 왔습니다. 은행 마감 시간이 가까원서 급히 외환은행으로 가서 환전을 하러 갔는데 놀랍게도 저가 오랫동안 찾지 못해서 걱정하던 여호수아 엄마 이영자씨를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오랫동안 그의 거처가 걱정이 되어 알아볼 방법도 없고 해서 마침 전에 윤권사님이 그를 은행에서 만났다고 해서 다음에 만나면 그를 따라가서 집을 알아놓으라고 했는데 오늘 딱 만나게 된 것입니다.
처음 이영자씨를 만난 것은 파키스탄 자베드와 같이 저를 찾아 왔던 것이 7 년 전쯤 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환자가 찾아와도 결혼식을 요청해도 거절한적이 없는데 이 두 사람의 결혼식을 해 달라는 도움의 요청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영자씨는 정신 장애로 먼 곳에 가족이 있다고 하지만 아무 연고도 본적이 없고 자베드는 당시 40 이 된 이 한국여인이면서 키가 초등학생 정도인 이 자매를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고 불럽체류 대신 비자를 얻는 목적으로 결혼을 하려고 해서 우리는 그의 속셈을 알기 때문에 결혼식을 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두 사람은 다른 곳에서 결혼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후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이 여호수아입니다.
장항동 공장이 많은 지역 한 옥탑방에 이들은 같이 살림을 차렸는데 이 엄마는 애기를 키울만한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애기를 난지 얼마 안되었을 때 그 집에 가보면 소독을 해서 먹여야 하는 우유병을 여기 저기 방바닥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염려 한데로 이 남자는 여자가 가지고 있던 돈을 가지고 외국에 가서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모자를 돌보면서 근본적인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하여 서류를 모두 작성하고 병원에 가서 장애인 진찰도 받고 동회에 제출하여 그때 55 만원씩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그 돈을 찾기 위하여 은행에 왔는데 지금은 올라서 85 만원이 되었고 동회에서 쌀도 주고 여러 가지 혜택을 받아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영자씨의 말이 그때 도움으로 살아가면서 너무나 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 그 남자는 나타나서 당분간 같이 살다가 지금은 이혼을 해서 아들하고 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젖먹이가 어느새 커서 이번에 학교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영자씨도 마치 이산가족 찾듯이 반가워 했고 저도 너무 기뻤습니다. 언젠가는 애기를 잘 보지 못해서 떨어트려서 머리를 다쳐서 일산병원에 입원하여 연락이 온 적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사연이 많았는데 이사한집을 제게 가르쳐 줄만한 지능이 되지 못하고 그 남편이 옮겨서 찾을길이 없었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 아는 사람도 한 명도 없이 이색적인 얼굴을 한 아들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불쌍한 영혼을 또 다시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라반디 하고 라리드가 저를 불러 낸 것은 오랫동안 걱정하던 이영자씨를 만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특히 금년에는 우리가 장애인 사역과 국제 결혼한 가족을 더 섬기는 것이 비전인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보면 너무나 경이롭기도 하고 그 자그마한 체격에 혼자 있는 방을 가보면서 안타까움이 엇갈렸습니다. 반찬도 한가지도 제대로 못하는데 아이하고 무엇을 먹고 지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에 살던 집은 알기 때문에 김치도 수시로 갔다 주었는데 그 동안 주지 못해서 무엇을 해 먹었느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할줄 안다고 하는데 집안은 여전히 어질러 있었습니다.
같이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늘 느끼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영혼 하나도 보살피고 눈동자 같이 지키십니다.
[신32:10]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