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영진이는 내년 2 월 19 일이면 만 열 살이 됩니다. 영진이가 세상에 처음 나올 때부터 옆에서 지켜본 저는 금년에 영진이가 걷기 시작한 것을 보고 우리 모두 “할렐루야” 를 외쳤습니다. 그 영진이가 아직 말을 잘 못하지만 이제 말을 많이 알아듣게 되었기에 내년에는 일반 초등학교를 입학시키려고 계획을 하고 있다고 엄마 인 엄집사님이 어제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지금 비록 말을 못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믿음으로 잘 할 것을 믿으며 보내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뇌성마비로 온몸이 늘어져 있는 상태로 늘 유모차를 타고 다니던 영진이가 이제 드디어 다른 아이들과 같이 학교를 갈 생각을 한다는 것 만으로도 우리에게 마음 설레는 소식이었습니다.
엄집사님과 어제저녁에 그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백만을 전도하는 일이나 한명 영진이를 통하여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나 같은 일이라고 서로 이야기했습니다. 영진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면 영진이는 엄집사님 가정에 축복의 통로인 것입니다.
오늘 낮에는 영진이 아빠 되는 김집사님과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세계를 잠시 나누어 보았습니다. 우리 나라 장애인 시설이 좋다고 하는 정부 지원하는 곳도 그냥 할 수 없는 것을 도와주는 정도이지만 선진국에서는 재활치료를 활발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설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같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실내 수영장 같은 시설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정신병원에 그렇게 오래 사람을 입원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정신병원을 잠시 보고 그곳이 병원이라는 것보다는 수용소라는 이미지가 더 강했습니다. 그런 곳에 입원을 하면 심하지 않던 사람도 오히려 정신병이 더 심해 질 것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전에 우리나라가 더 가난할 때는 그런 병이 더 심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때는 대문만 열고 나가면 아이들은 공기 돌 맹이 가지고 공기도 하고 같이 어울리고 놀기 때문에 사람과의 접촉이 아주 쉽고 열려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공부만 하고 경쟁 대상이 되어 특히 아파트라는 빌딩숲에 가리워서 사람과의 대인관계를 갖기가 힘들기에 더 그런 병이 많이 생긴다고 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그 날이 가까워 오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깊게 묵상해 본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왜 그렇게 낮은 모습으로 오셨을까? 그분이 오심으로 우리 삶 속에 무엇이 달라지는 것일까? 우리는 그 의미를 깊이 깨닫고 감사하며 이 비밀을 모르는 수많은 고통 속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야 하는데 우리는 고통 속에 있는 영혼들을 주님이 품는 마음처럼 품지를 못하는 것이 진정 가슴 아픈 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최초의 선교사 바울의 기도를 되새겨 보며 어떻게 그런 기도를 드릴 수가 있었을까 자신을 돌아봅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중보 기도할 때 변하지 못할 영혼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며 주님의 사랑의 의미를 배우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더딘 것일까 회개 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롬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자신의 영생이라도 포기할지라도 구원해야 될 대상자를 위한 기도의 차원에 우리는 언제나 도달할 수가 있을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불평으로 일관하면 모세를 괴롭히는 그들을 위한 모세의 중보기도도 바울과 마찬가지 입니다.
출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