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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마마킴||조회 8,878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2:1-3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이 단어만 묵상하여도 깊은 감동이 몰려옵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 가 감추어져 있다는 그 비밀을 이 시간 확실한 이해와 모든 풍성함의 의미를 가슴 문을 활짝 열고 알고 싶습니다.  저희 심장을 그 비밀로 채우고 싶습니다.

 

이방 종교에서 자라나온 수 많은 외국인들은 많은 경우 개종을 하였다고 하여도 “신”을 믿는다 그렇지만 왜 예수인가? 라는 질문을 수 없이 합니다.  그리고 개종을 하여 교회를 나온다고 하여도 기도할 때 들어보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있는데도 불구 하고 영어로 “God” 이렇게 부르면서 기도를 하는 것을 듣곤 합니다.

 

어제는 한 형제가 하는 말이 자기는 이십 년을 열심히 기도했고 착한 일을 많이 했는데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될 터인데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고 하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개종한지 한 육 년쯤 된 것 같은데 이십 년이라고 해서 언제 이십 년 동안 기도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타 종교에서 부르던 “신”을 똑 같이 부르며 기도하면서 신은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모슬림 나라인 말레이시아에서 살 때 그들의 언어를 배우면서 한가지 크게 우리나라 말의 표현에 “하나님”을 참 감사했습니다.  그들의 언어에서 성경이나 모슬림이 부르는 알라신이나 신은 똑 같이 알라였습니다.  그런 연고로 사람들에게 구별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한국어는 하나 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이라고 부르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는 언어자체에서도 잘 믿을 수 있는 축복된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안에 있는 성품 중에 “겸손”이라는 옷은 얼마나 입고 싶은 옷인지 모릅니다.  “겸손이라는 옷”을 입고 있으면 어떤 사람도 존경스럽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홀리네이션스 선교회에 오시는 의사선생님들은 겸손의 옷을 입고 오시기 때문에 우리가 가까이서 그런 분들의 모델을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분들을 보며 “저분 의사 맞아요?” 라고 하곤 합니다.  조금도 교만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제한의 용서”는 우리의 어떠한 상처나 더러움도 씻겨줍니다.  바로 주님이 그 대가를 십자가에서 지불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처음 일곱 번을 용서하면 많은 것으로 생각하고 물었을 때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8:21-22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바로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루심으로 용서의 길을 열어놓으셨기 때문입니다.우리는 수시로 그 보혈로 우리를 씻고 용서함을 받을 뿐 아니라 “죄” 로 인한 하나님과의 교제에 방해되는 것을 미워해야 되는 것을 묵상해 봅니다.

 

이 예수가 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을 진데…..그 안에 또한 감추어진 지혜와 지식과 모든 보화를 알기를 소원합니다.  한 작은 영혼도 소홀히 여기지 않으시는 주님을 목상하며 그 안에서 거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이 비밀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습니다.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우리는 어떤 선행을 해서 구원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 우리를 자유게 하기 위하여 부르신 하나님, 왜 죄의 짐을 지고 여전히 슬프고, 두려움 속에서 이 귀한 세월을 다 보내고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삼을 누리지 못할까요?  주안에서 자유 함을 들이마시며 사랑을 고백합니다.

 

:예수 결박 푸 셨도다 나는 자유 해” 라는 복음 송을 부르며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