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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되는 두 모성

마마킴||조회 6,396

비교되는 두 모성

 

지난주 전철 안에서 6 살쯤 된 누나와 4 살쯤 되는 동생을 데리고 한 엄마가 올라탔습니다.  그 엄마는 높은 하이힐을 신고 선글라스를 끼고 멋을 낸 멋장이 엄마였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내 옆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잠시 후 두 아이들은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재미있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남동생이 누나의 목에 어깨 동무를 하고 깔깔거리며 귀엽게 노는 모습을 옆에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두 아이들은 사랑스럽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엄마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왜 그렇게 장난을 치냐고 하며 두 아이 사이로 가운데 자신이 앉으면서 뛰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볼 때 두 아이들은 보통 아이들이 노는 정도의 정상아이들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엄마의 목소리가 더 공해로 들렸습니다.  갑자기 즐겁던 장난이 저지되자 어린 동생은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는 작은 가방을 어깨에 매고 있었는데 엄마가 운다고 그 가방을 확 뺏어버리더니 “아휴 아휴” 라고 소리지르며 무섭게 하니까 아이는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 우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군중이 보고 있지 않으면 두들겨 팰 기세의 엄마를 보니 두 아이가 너무나 가엾고 어린 마음에 받을 상처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귀여운 아이를 엄마가 되가지고 그렇게 귀찮은 물건 취급하나 하는 생각에 그 엄마를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마침 나와 같은 정류장에서 하차하였는데 두 아이를 손을 잡고 걸어가지만 아이들은 마치 끌려가는 동물같이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저런 엄마 밑에서 자라나야 할 두 아이가 불쌍했습니다.

 

전에는 고아원이라고 부르던 곳이 지금은 복지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전쟁후보다 지금은 부모 없이 더 많은 아이들이 그런 시설에서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많은 가정이 결손가정이 되어 아이들을 돌보지 않기에 한쪽 엄마나 아빠 아니면 할머니하고 사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엄집사님은 얼마 전 영진이를 위한 감사를 고백하였습니다.  뇌성마비로 십 년 동안 일어서지 못하던 아들 영진이가 금년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서 걷게 되어 감사한 것은 전에는 아들이 똥을 싸면 일어서지 못하니까 아이를 들어 올려서 목욕을 시켜 주다가 이제는 설수 있어서 서서 샤워를 해 주니까 그렇게 편하고 감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엄집사님은 십 년 동안 영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수 없이 뽀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엄마도 알아보고 미소를 짓지도 하고 손으로 무엇을 잡기도 하지만 전에는 눈도 못 마주치고 엄마를 알아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재활 치료도 끊임없이 데리고 다니면서 사랑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엄마의 그 놀라운 사랑의 기도가 기적을 나아서 영진이가 걷게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너무나 잘생긴 정상아이를 그렇게 거칠게 대하면서 엄마가 되가지고 상처를 주는 모성은 서기만 해도 감사하는 엄마를 좀 보고 느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못쓰니까 그렇게 힘들었는데 걷기만 해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데 정상적으로 태어난 아이를 엄마의 왜곡된 모성으로 마음에 장애자를 만들 것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인간의 사랑 중에 가장 숭고한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으로 치는데 요즈음은 너무나 이기심이 발달하여 그러한 사랑도 소수만 진실한 사랑을 하는 것을 봅니다..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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