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선
행3:2-8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이 말씀을 수없이 설교를 듣고 아는 본문인데 오늘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는 부분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그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우리를 보라”고 했을 때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이 어떻 했을까 라는 묵상이었습니다. 나는 사도행전 2 장에서 성령의 세례를 받은 베드로의 모습은 사랑이 넘쳐 있기 때문에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령하기 전에 그 모습만 보아도 이미 치료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라는 부분이었습니다.
그 환자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동냥 몇 푼을 던져 주어서 연명을 하고 살았겠지만 아무도 그의 모습에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그냥 던져 주던지 아니면 쳐다보아도 단 한 명도 진정 그 영혼을 사랑하는 눈길로 본적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그가 베드로가 우리를 보라 했을 때 깜짝 놀랐을 것이라 상상이 되어집니다. 처음에는 무엇을 얻을까 하고 쳐다보다가 보통 사람에게서 없는 사랑의 눈길은 이미 그의 영혼을 치유하고 예수 이름을 선포하는 순간 그의 영과 육은 살아서 걷기도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으리라 묵상이 되었습니다.
전에 후진국에서 살다가 온 사람이 하는 말이 모든 것이 싸서 귀족처럼 살수 있어서 좋았다는 것입니다. 저임금으로 몇 명의 하인을 두고 운전 기사를 두고 골프를 치고 즐기는데 한가지 즐거움을 삭감시키는 것이 거지가 많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참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지는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크리스천은 알 수가 있습니다. 라마단이 시작하여 모슬림들은 종교적인 열심으로 한국에 와서도 노동을 하면서도 금식을 하는 것을 수년째 보았습니다. 그들이 신을 섬기는 열심은 참 대단합니다. 그런데 다른 것이 이웃을 내 몸 같이 섬기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기독교인과 달리 그들에게서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은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 충만해 지자 전에는 제자들과 누가 더 높은지를 따지던 유치한 인격에서 모든 사람들이 무관심한 그 걷지 못하는 한 영혼에게 시선이 갔을 뿐더러 그의 영혼의 치료를 육체의 치료와 함께 근본적인 치료를 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그렇게 바뀌어질 때 수 많은 상처 받고 사랑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근본적인 치유를 베푸시는 주님의 사랑을 보여 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베드로와 같이 “우리를 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과연 우리의 모습에서 사랑의 주님의 모습이 보여질까요?
우리 애기는 이십육 개월 밖에 안되었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나 잘 아는 것을 봅니다. 매일 같이 지내면서 작은 한 인격체를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린 애기도 아는데 사랑은 위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은주는 언제부터 발가락 하나로 여러 가지를 할수 있었느냐고 물으니 아홉 살부터 엄마 아빠가 일 나가고 없으면 밥을 먹기 위하여 발가락으로 수저를 집어 보았더니 되어서 그때부터 발가락으로 밥도 먹고 머리도 빗고 화장도 하고 컴퓨터 자판을 쳐서 시를 썼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집이 나올 생각을 하면 너무 기쁘다고 하면서 제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라고 합니다.
나는 은주에게 답을 보냈습니다. 나와 은주의 아버지는 부자이기 때문에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다구요. 단지 책을 내려면 작업이 좀 많은데 요즈음은 우리 애기 보느라고 시간이 좀 자유롭지 못한 것뿐입니다. 나는 은주가 휠췌어에서 일어나 걷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의 꿈대로 헬렌켈러 같이 쓰임받는 귀한 인물이 되기 위하여 함께 돕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은주의 시집을 위하여 그의 장래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