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사랑의 의미를 배우는 과정
롬5:6-8 우리가 아직 연약한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죄인 되었을 때에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는 말씀을 배우지 않고는 주님의 제자의 길을 결코 갈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절대 경건한 자가 아니었고 우리는 오직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가겠다고 고백할 수가 없습니다.
이 글은 우리 사랑하는 신 학생들과 주님 뜻대로 살기를 원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기록합니다. 아래에 몇가지 에를 들었지만 이런일들은 수도 없이 일어나는 것이 주님 따라가는 길에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가면 우리는 좀더 이해가 쉬울것입니다.
뱅글라데시 므스타파
뱅글라데시 무스타파는 공장 방 한구석에 부러진 다리의 고통을 참으며 내 팽개쳐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공장에서 작업을 하다가 위에서 무거운 것이 떨어져 그의 다리가 부려졌는데 돈이 없는 중소기업주는 그를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고 그는 고통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를 급히 병원에 입원을 시켜 거의 두 달을 치료 하였습니다. 병원비도 많이 지불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물리치료 이상 모든 치료를 해 주고 퇴원을 하라는 병원 측의 지시에 따라 퇴원을 시켜서 쉼터로 데리고 와 요양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의 부러진 다리는 좀더 쉬면서 시간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쉼터에 있는 다른 외국인들이 그의 다리를 보고 너는 물리치료는 받지 않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미 물리치료 이상 더 좋은 것을 받아서 단지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설명을 해도 그는 믿지 않으며 늘 불평하며 나를 보거나 윤권사님을 볼 때 화가 난 얼굴로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토로하곤 하였습니다.
파티스탄 자베드
우리를 항상 도와 주시고 협조해 주시는 의사선생님들의 배려로 수 많은 환자들을 고칠 수 있는 가운데 한 병원은 천사 같은 선생님이 운영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날은 병원문을 닫기 직전에 자전거를 타고 가던 자베드가 심하게 다쳤습니다. 그리고 제게 전화를 해서 긴급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시간을 보니 운전을 하고 가는 시간을 감안하면 병원이 문을 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께 긴급 전화를 드리고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드리니 친절한 선생님이 간호사는 퇴근을 시키고 혼자 기다리고 계시다가 치료를 해 주었습니다. 많이 다쳐서 치료를 여러 번 받았고 이제 상처가 아물기만 기다리면 되었습니다. 그는 얼굴의 상처를 볼 때 마다 다른 좋은 병원에 데리고 갈수 없느냐고 마치 좋지 않은 병원을 데리고 가서 상처가 빨리 아물지 않는 것 처럼 불평을 했습니다.
얼마후 시간이 필요한 그 치유는 이야기 해 준 대로 아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그렇게 도움을 주고 배려를 해 준 선생님께 감사는커녕 불평하는 그를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를 배우는 귀중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어제 장례식
하나님이 참으로 정희자 자매를 사랑하여 목사님 세분이 계속 예배를 드려 주셨고 신학생들의 손으로 운구도 옮겨 져서 모두 이구동성으로 장례가 잘 치루어 졌다고 말했습니다. 거금인 장례비도 우리가 모두 담당했으니 얼마나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사랑하시는지요.
그런 가운데서 어린 아이들 박에 없는 그 가정을 보는 것은 역시 참으로 고통을 통하여 말씀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고 1 학년밖에 되지 않은 어린 호근이가 첫날은 엄마가 술이 취해서 목사님이 오셔도 신발벗는 입구에서 누워서 자고 있고 예배를 드려도 졸고 있는 엄마를 옆에서 깨우면서 계속 괴로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다음날은 엄마는 술에서 깨었지만 아무 문상객 하나 없는 그 장례식장에서 엄마는 사망진단서를 띠랴 동회에 갈랴 혼자 동분서주 하는 가운데 밤새 잠도 제대로 못잤고 그곳을 지키고 있는 터라 얼굴이 많이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전에도 아이들 다섯명만 있는곳에 장남이라고 어린 것이 이모를 가끔은 안고 옮겨야 되기도 하고 병원에 입원 해 있을 때도 때로는 지키기도 하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삶이었을것입니다.
화장터에서 이모의 시신이 타기 들어가기 시작할 때 모든 하객은 그때가 11 시가 지났는데 아침 식사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시간 사십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기에 우리 정이 많은 삼위교회 가족들에게 저는 너무나 미안해서 같이 식당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그 아이들과 친구들도 배고플 것을 생각해서 같이 식사를 하고 오자고 했더니 “제발 좀 그만 내버려 두세요.” 하고 호근이는 폭발하는 폭탄처럼 소리를 질렀습니다. 한번이 아니라 계속 소리를 지르자 우리 신학생들도 모두 깜짝 놀라서 쳐다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너무 민망하다가 장례식이 끝나고 나는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그렇게 소리 지를수 밖에 없는 상처토성이인 그 가정의 아픔과 고통의 의미와 그 한 영혼을 어떠한 사랑으로 사랑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씩 헤아려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생각을 그렇게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옆에서 보던 우리 삼위 식구들은 저마다 어떻게 저희를 도와 주는 사람에게 고마워 하기는커녕 그렇게 신경질을 부릴수 있느냐고 한마디씩 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나도 그러한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돌아보면 죄로 얼룩진 발걸음이었고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연습해 보아야만 하나님의 사랑을 배울수 있지 않겠습니까?
인도에 복음을 전하여 많은 열매를 맺은 존 하이드 선교사는 그러한 사람들을 도와줄 때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들을 하면 “하나님이 돌아온 탕자에게 회초리를 들었습니까?” 라고 반문하였습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우리는 더 강도 깊은 사랑으로 감싸 안고 인내하며 중보기도를 드릴 때 한 영혼이 돌아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가 그렇게 중보기도 할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상처받은 그들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수 있게 도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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