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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 승리하는 엄마

마마킴||조회 7,295

기도로 승리하는 엄마

 

 

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나라가 몽골로 떠나기 전 두 아들에게 한국을 보여주고 싶다고 해서 지난 월요일에 잘생긴 두 아들이 한국에 왔습니다.  금년에 대학입학시험을 치른 아들과 고1이 되는 아들입니다.  그 두 아들을 보니 내 마음이 너무 기뻤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춘기 때 오 년이라는 세월을 엄마가 한국에 있을 때 이들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것입니다.  엄마가 옆에 있어도 삐뚜로 나가기 쉬운 사춘기 때 아들들은 반듯하게 자랐고 큰 아들은 전국 수학고시 대회에도 일등을 하고 하더니 이번 대학시험에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학 회계학과에 합격을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신앙적으로도 믿지 않는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도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반듯하게 생긴 이들을 보면서 오 년 이란 세월 동안 나라가 기도로 살아온 것이 스쳐갔습니다.

 

이년 전에 어느 날 밤에 아무 예고 없이 서울 신대 기숙사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때 힘보레이가 심한 감기몸살로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약을 가지고 간 것입니다.  수요예배 후에 그곳을 가니 도착한 시간은 밤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기숙사 앞에 차를 주차하는데 그 옆 산에서 주여 하면서 간절히 부르짖으며 누군가가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라다 라는 예감이 스쳐 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라가 자신이 밤마다 기도한다고 내게 얘기 한적도 없는데 그 많은 학생 중에서 잘 구별이 안 되는 주여 라는 목소리로 한마디를 듣고도 나라 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에 보레이가 기거하는 방으로 우리 학생들은 모두 모였고 생각한대로 그날 비가 좀 오는 밤이었는데 나라가 기도하고 있었던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있는 길지 않는 시간에 그렇게 나라는 기도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라는 학교선생님이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처음 공장에서 일을 할 때 윤 권사님 전도로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신앙생활이 오늘날 석사과정을 마친 주의 종으로 신분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첫째 한국어로 외국인이 공부한다는 것은 정말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을 봐야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숙대어학당에서 6 개월 공부한 실력으로 우수한 성적으로 석사과정을 마친 것이었습니다.  숙대에서 한국어 공부할 때는 한 반에 우수학생 한 명에게 주는 장학금도 받을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성경을 기본으로 알고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자란 사람들이 주로 신학교를 오는데 나라에게는 모든 것이 넘어야 할 놋 성벽 같은 어려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고 어떻게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가운데서 성령의 강력한 힘으로 기도를 하니 금년에는 하루에 네 시간씩 기도를 하였고 성경을 매일 두 시간씩 읽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두 고온 두 아들이 엄마로써 얼마나 걱정이 되었겠습니까?  그런 모든 어려움을 오직 주여 한마디에 실어서 하나님 보좌 앞에 보내드렸을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자신의 공부를 다 잘 마친 것뿐 아니라 아들들도 그렇게 잘 키워 주신 것입니다

 

이제 9 월이면 몽골에 멘홀 속에서 사는 길거리 아이들을 위한 사역을 하러 떠나게 됩니다.  그 수 많은 아이들의 엄마가 된 후에도 그렇게 기도하면서 나아가면 지금까지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실 것을 믿으며 기도로 승리한 엄마에게 박수를 치며 축하를 전합니다.  나라 정말 수고했어요.  기도로 계속 승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