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귀한 세월 보내고
자금부터 13 년 전에 한 부부가 저희 집에 일주일 동안 여행을 왔습니다. 우리가 외국에서 사는 동안은 늘 그런 방문객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 부부는 우리 가족이 사는 것을 보고 자신들과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하면서 자신들도 그러한 삶을 갖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그분들이 50 세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방식대로 살던 삶은 너무나 굳어 있기에 생각대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인생으로 바로 전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났습니다. 그러자 남편 분이 중병에 걸려서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는 다시 주님을 소개 해 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중대사에 걸려 있으니 스폰지에 물이 흡수하듯이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 주님께 마음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리고 퇴원을 한 후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사업도 재미있게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교회에 가니 헌금 이야기가 거슬린다고 하면서 건강이 회복되면서 다시 옛날의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이번에는 먼저 보다 더 마음이 굳어졌습니다.
다시 세월이 그렇게 또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사업이 부도가 나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믿었고 쌓아 놓았던 것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노년의 힘없는 한 인생만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그분이 이제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성경공부도 새롭게 시작했다는 전화를 했습니다. 그 전화를 듣는 순산 바로 이 찬송가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 귀한 세월 보내고 이제 옵니다
나 뉘우치는 눈물로 주여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
나는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권합니다. 왜 그 귀한 세월 보내고 오는것일까요? 왜 고아같이 인생을 살기를 고집하는것일까요?
어느 날 보육원의 장면을 TV 에서 방영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친부모와 살 때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고 때를 쓰기도 하는데 그곳에 아이들은 겨울에 7 시면 아직 어두운데 아주 어린데도 한번에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해설자가 하는 말이 어려도 그렇게 해야만 그곳에서 살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살쯤 된 아기가 잠이 들 때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엄마가 두드려 주듯이 하는 것입니다. 어릴때 엄마가 두드려 주는 손은 얼마나 단잠을 잘게 할 수 있게 하고 안심을 주는 손인데 그것이 없으니까 자신이 두드리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지 않은 인생은 고아로 살아가는 고달픈 인생입니다. 고아가 아니라도 아이들은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두 살 난 애기를 어린이 집에 잠시 보냈더니 아주 슬프게 울어서 도로 안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발음도 잘 되는 않는 귀여운 언어로 “어린이집 안가, 나는 울 거야.”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그렇게 짧습니다. 요즈음은 청춘 남녀 잘 생겼다고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노라면 금방 주름이 자리잡을 그 모습이 같이 오버랩 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설날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하고 살게 됩니다. 그런 연고로 시간보다 더 귀한 것은 없고 다시 올 수 없는 그 순간 순간의 소중한 시간들을 주님 만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고 다짐을 다시 해 보곤 합니다.
왜 하필이면 “그 귀한 세월 보내고 이제 옵니다” 라는 찬송을 부릅니까? 그런 고백보다는
“주와 동행하니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라는 기쁨과 감격의 고백 찬송이 얼마나 좋은지요? 물론 영원히 믿지 않는 것보다는 늦더라고 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러나 일생을 고아처럼 힘들게 살다가 늦게 패잔병의 심정으로 돌아오는 것 보다는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하면서 이 귀한 세월을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까요?
이미 믿는 다고 하는 사람들도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으로 더 많은 사랑을 심으면서 사랑의 향내를 맡을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요? 이왕 예수를 믿는다고 교회에 발을 들여 놓았는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기쁨을 모른다면 교회 내에서도 여전히 고아처럼 살아가는 인생은 더 불쌍한 인생이 아닐까요?
오늘 이 순간 내게 건강이 있고 힘이 있고 물질이 있고 지혜가 있을 때 지극히 작은자를 주님께 하듯이 사랑하고 섬기면 그것은 곧 천국은행에 저축을 하였다가 내가 필요할 때 찾을수 있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은행이지요. 그리고 주님은 추리와 기쁘게 동행하신답니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시기를 원하는데 우리가 그분을 외면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 귀한 세월을 아낍시다. “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에수께로 나옵니다” 라는 슬픈 찬송을 부르지 마시기를…..반대로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 승리의 고백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