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잘 멈추는 것입니다
주일날이면 네 대의 봉고차를 운행하여 외국인들을 태워 옵니다. 스스로 대중교통을 타고 오는 외국인들도 많지만 대부분은 교통이 아주 불편한 곳에 그들이 일하는 공장이 위치하고 있기 대문에 보통 20-30 분 걸어야 버스 정류장이 있고 버스도 자주 오지 않은 지역이며 두번 세번 갈아타고 교회에 옵니다. 그래서 네 대의 봉고차를 운행하는데 나는 박윤태집사님이 운전하시고 같이 파주 쪽으로 갑니다.
대화 역을 거쳐 동패리 쪽을 돌아서 교화를 지나 오는데 어떤 때는 이미 지나온 지역에서 전화를 걸어서 “마마 나 지금 대화 역에 있어요’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방향을 돌려서 그곳으로 갑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 다반사로 있기 때문에 당연히 한 명이라도 다시 돌려갑니다.
주일날 의료 서비스 외에 한 명이 아파서 병원에 가려고 하면 최소한 세시간은 걸립니다. 장기 치료를 요하는 환자는 보통 퇴원 후 몇 달을 통원치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한 명과 몇 달 동안 특별 데이트를 하게 됩니다. 일년 반 내지 이년이 걸린 환가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통하여 사랑하는 법을 조금씩 더 배워 가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같이 한 분을 위하여 나의 모든 시간을 들이는 그러한 일들도 한 영혼을 위하여 멈추는 시간입니다.
우리 집에 두 돌 된 손자를 위해서도 멈춥니다. 우리 애기는 모든 것을 멈추고 둘 이만 놀고 있으면 너무나 행복해 합니다. 나는 그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 즐겁습니다. 책을 여러 권 펼쳐놓고 전에는 읽어달라고 하더니 요즈음은 그 책을 모두 외워서 내게 자신이 아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 쓰지 말아야 하는 단어가 “너무 바빠” 라는 말입니다. 내가 바쁘다는 인상을 주는 모습도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는 모습입니다. 한 사람을 위하여 기꺼이 멈출 수 있는 모습이 푸근한 사랑이 전달됩니다. 이것도 연습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현대인들은 모두 무엇을 위하여 바쁜지 모르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생명이고 사랑을 주고 받는 것 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때로는 중환자 한 명이 생기면 그 한 명에게 백 명이 먹는 돈보다 더 많이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계산에는 한 명이나 다수나 동일합니다.
우리 선교회는 열두 명의 신학생이 있지만 그들 중에 때로는 고민이 있어 보이거나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훈계를 늘어놓기 보다는 토요일 새벽 성경공부가 끝나고 기도시간에 그 한 명만 두 손을 꼭 잡고 서두르지 않고 깊은 기도를 한 시간쯤 해 줍니다. 한 명을 위해 시간을 멈추는 것입니다. 그렇게 몇 주를 보통 반복하면 그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봅니다.
한편 우리 신 학생들에게도 사랑을 연습하는 숙제를 주었습니다. 사랑도 자꾸만 연습을 하면 더 잘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 즉 생명까지도 우리에게 주신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기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습니다. 그 사랑을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 사랑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