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멈추는것입니다
사랑이 멈추는 것이라는 것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사랑에 관한 정의 입니다. 그 사랑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눅10:29-37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어제는 이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한 사람을 위하여 멈추어 설 때 하나님의 기적이 함께 하는 것을 우리는 셀수 없이 체험하였습니다. 홀리네이션스 선교회에 기적이 상식처럼 일어나는 것을 사람들은 놀라고 역시 체험해 보고 싶어합니다. 주님의 가르치심 대로 한 영혼 앞에 멈추어 보시면 그 말씀이 사실인 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길에서 쓰러진 외국인이 목숨을 잃어버릴뻔한 몽골사람 깐숙씨의 병원비 550 만원은 우리 학생들 생활비를 지불하는 날과 같은 날이었습니다. 매달 21 일은 학생들의 생활비 지급 및 쉼터 한달 식비와 선교사님들에게 후원금을 보내는 날입니다. 요즈음은 1000 만원도 넘게 드는데 바로 그날 잠시 출장 왔던 외국인이 길에서 쓰러져서 그렇게 많은 돈을 내야 했습니다. 한달에는 수 천만원이 지불해야 하는 상황인데 주님이 한 사람을 위하여 멈추라고 가르쳐 주신대로 그를 살렸습니다. 그래서 깐숙씨는 생명을 구해서 몽골로 돌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어떤 외국인은 위급상황에서 병원에 입원하면서 의료보험이 없는 외국인에게 보증금을 요구하는 병원 측에 우리 명함을 내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병원 측에서 그 외국인을 받아 주어도 되느냐고 전화가 왔을 때 우리는 주님이 멈추라고 한대로 우리 발걸음을 한 생명을 위해 멈추었습니다.
돈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도 그 한 영혼을 위해 멈춥니다. 레위인과 제사장이 강도만난 사람을 피하여 급히 가는 것을 책망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면서 급한 우리의 시간을 한 영혼을 향해 멈춥니다.
하루는 점심에 이집트 와기 부부를 우리 집에 초대했습니다. 바로 그 아침에 허리가 아파서 전혀 움직일 수가 없다고 병원에 가고 싶다고 외국인이 전화를 했습니다. 정말 시간을 쪼개기가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 형제를 데리고 병원에 갔습니다. 내가 차를 몰고 나타나자 모슬림인 그 외국인은 너무나 놀라 했습니다. 내가 사전에 오늘은 이런 상황이니까 오후에 가도 되느냐고 먼저 물어 봤기 때문에 그는 내가 너무나 바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오후까지 참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그에게 우선권을 준 것입니다. 그리고 병원에 다녀와서 예정대로 점심 대접을 하였습니다.
주님이 멈추라고 할 때 멈추면 기적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고 우리 일상생활에 있는 일인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그때 당시에는 쓰러진 사람을 짐승에 태워 데리고 가는 대신 우리는 차에 태워 가는 것이 다를 뿐 한 생명을 위해 멈추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입니다. 누가복음에 이 말씀은 수 없이 읽고 들은 본문인데 다시 묵상하면서 이제 우리의 기도제목은 지극히 작은 자를 위하여 더 잘 멈출 수가 있기를 간구할 뿐입니다..
한데 왜 예수님께서 그냥 지나간 사람들을 레위인과 제사장을 들먹였을까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냥 평범한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지나갔다고 해도 되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잘 안다고 하는 율법사에게 끝맺음 결론은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바로 이 쓰러진 한 생명을 무관심하고 그냥 바삐 지나쳤기에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가고 상처를 받고 마어너스 숫자로 들어간 것을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할 절실한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멈추어 서야 합니다. 쓰러진 사람을 돌보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들어도 사마이라 인은 경비가 더 들어도 주겠다고 했습니다. 레위인과 제사장은 바쁜 것이 종교행휘를 하기 위하여 바뻤겠지요. 우리가 부름을 받은 것은 곁으로 보이는 종교행위가 아니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면 이웃을 향하여도 사랑하는 그것을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은 없다고 책망합니다.
단지 육체가 아파서 쓰러져 있는 사람 외에도 수 많은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받고 사랑이 목말라서 여기 저기 쓰러져 있습니다. 한 생명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한 생병을 위해 멈추었을 때 주님은 기적을 베푸십니다. 기적은 다른 것이 아니고 주님이 직접 일을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멈추었을 때 단 한번도 병원비를 구걸하지도 않았고 지체한적도 없습니다. 단지 그분을 위하여 심부름을 하는 즐거움이 우리를 조금씩 주님 곁으로 갈수가 있게 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