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정리
우리 아버지께서 주신 통장은 좀 색다릅니다. 우리 각자에게 다섯, 둘, 하나 이렇게 다르게 주셨습니다. 언뜻 보면 불공평한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다섯을 받은 사람은 많이 받은 대로 둘은 둘대로, 하나는 하나대로 받음만큼 투자하여 남겨야 하니까 공평한 원리입니다.
요즈음 내가 받은 통장을 많이 드려다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그 통장에는 받은 만큼 남겼다고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새롭게 깨달은 부분은 바로 “조건 없는 진실한 사랑”이었습니다. 거기까지 깨달은 다음에 내 통장을 체크해 보았습니다. 정말 받은 것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내 놓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전혀 득점을 올릴만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착각을 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드려다 보고는 애통하는 마음으로 슬퍼하며 회개하는 심정입니다. 사랑한다고 흉내만 내었지 사실은 조건 없는 진실한 사랑은 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그러한 모습으로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의무적으로 하는 사랑은 득점과 관계가 없습니다. 공연히 수고만 하였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이 아닙니다. 무엇 무엇 때문에 사람은 사랑을 합니다. 어떤 조건을 사랑하는 것이지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아 부족하다, 긍휼이 부족하다” 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우리 속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이나 긍휼이라는 것이 나올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부족한 것이 아니고 전혀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살아나는 힘은 바로 “조건 없는 진실한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어떤 조건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우리가 받았기 대문에 우리도 사랑에 빚진 자로써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기 때문에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고 사랑을 받았고 그분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사랑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요13: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 어머니는 한번 앉아 보지도 못한지 4 개월이 지났습니다. 물론 화장실도 못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사랑하는 법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싶어하셔서 이러한 시간이 주어진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자식 된 도리로써 아니면 의무로 한다고 하면 주님의 기준에 적격미달이 되어 내 통장에는 전혀 사랑을 한 것을 기록을 볼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내게 말씀하십니다. “애야, 내가 너를 어떤 사랑으로 사랑했는지 잘 알지 않니? 너는 너무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아니니? 단 한번이라도 억지로나 의무가 아닌 진실로 사랑하는 것을 네가 할 수 있기를 부탁한단다.”
주님은 내게 명령을 하신 것도 아니고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것 또한 나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내가 계속 낙제점수 맡는 것이 안타까워서 가르쳐 주고 싶어서 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더러운 많은 죄를 짓고 살아온 죄인인지 모릅니다. 감히 얼굴을 들 수도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 죄를 보지 않으시고 예수의 피로 덮으시고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보여주시고 우리도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이 아닌 행동과 진실함으로 하는 사랑을 가르쳐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아8:7]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