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구 행복동 사람들의 대 이동
사53:1-5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금, 토요일 이틀동안의 강행군의 여정을 마치고 어제 예배 때 우리 학생들이 내게 물었습니다. “피곤하지 않으세요?” 내가 대답했습니다. “아니, 안 피곤해. 기쁜데 왜 피곤하지?” 정말 기쁜 여행이었습니다.
우리는 소록도에 무엇을 드리기 위해서 간 것이 아니고 무엇을 받기 위해서 간 것이었습니다.
모두 42 명이 갔는데 그중에 우리 홀리네이션스 팀이 24 명이 되어서 우리가 가는곳은 항상 시끌법석합니다. 치과선생님, 한의사 선생님과 초등학교 자녀 두명도 같이 동반을 했습니다. 우리는 5 월 5 일에도 김제에 가서 의료봉사와 함께 사랑의 하나님을 전할 어린이날 행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도 같이 가서 어린이날 행사를 그곳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갑자기 한쪽 마비와 함께 치매가 오는 것을 보면서 사람은 한 순간에 본인이 원하지 않는 병에 걸려 장애인이 될 수도 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소록도에 현재 살고 계신 700 명의 원생들, 200 명의 한센스 치유자면서 시각장에인이 되신 분들도 아무도 예기치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세번째 그곳을 방문하면서 권장로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들은 이야기 인데도 들을 때 마다 애환이 느껴집니다.
장래 푸른 꿈과 희망을 가진 청년이 있었습니다. 육사를 가고 싶은 장래 꿈을 꾸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피부에 불거져 나온 것이 보여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바로 한헨스병에 걸린 것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가족과 함께 얼마를 지나다가 25 세에 소록도에 왔습니다. 배를 타고 소록도에 내린 시간은 밤 10 시였고 칠흙과 같은 어두움만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자유롭게 배가 왕래 하지만 전에는 그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감옥과도 같이 느껴지는 섬이었습니다. 길을 찾느라고 어두운 길을 걸어가면서 나뭇가지에 찔리고 넘어지고 했습니다. 소록도를 잇는 바다거리는 뭍과 600m 밖에 되지 않지만 그리운 가족도 볼 수가 없는 먼 거리였습니다. 똥통을 지고 산길을 나르는 일을 강제로 하다 보면 똥통과 함께 뒹굴기도 했습니다. 그런 세월을 23 년이나 지내고 일반 세상으로 나온 것입니다. 한센스 환자들은 자신이 세번 죽는다고들 말했습니다. 일제시대에는 그 병이 걸렸다가 죽으면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생체해부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지금도 검시실이라고 하며 덩그런 빈 해부용 침대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 병이 걸렸을 때 이미 죽었고 해부용으로 한번 또 죽고 다음에 화장을 해서 또 죽어서 세번 죽는다는것입니다.
우리 권사님들은 허리 디스크병이 걸린 분들이 많은데 전에 그곳에서 살 때 돼지를 키우면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새끼 돼지를 한 마리 라도 죽이지 않으려고 돼지 우리에서 잠을 자고 힘든 일을 해서 그렇게 허리들이 많이 아픕니다. 나는 그분들이 다른곳이 아프다고 하면 그런 연고로 더 간절한 기도가 나옵니다. 며칠 전에 한 집사님이 병원에 입원한 곳에 방문했습니다. 이분도 전에 한센스 병을 앓았기에 손가락이 세개 보였습니다. 그리고 6 년 전에 중풍으로 쓰러졌는데 그 어간에 위암수술까지 받았습니다. 한가지도 힘든데 심각한 병을 세번이나 걸렸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을터인데 부인에게 교회 나가라고 권해서 한달 전부터 그 부인이 우리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한센스 시각장애인들하고 예배는 다른 어떤 분들과의 예배보다 뜨겁습니다. 그분들의 아멘 소리와 할렐루야 라고 외치는 소리는 얼마나 큰지 우리 모두 따라서 해 보았습니다. 이제 세 번째 방문한다고 나를 반가워하며 손을 잡습니다.
새벽기도는 시작이 세시 사십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틍동안 아침 기상을 세시 전에 했습니다. 내가 말씀을 전하기로 했는데 준비기도 하면서 어떤 말씀을 전할지를 고민했습니다. 이분들은 모두 신앙이 우리보다 좋으신 분들이기에 나 같은 사람이 마치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단지 주님이 어떤 모습으로 이세상에 왔으며 살았으며 십자가에 돌아가셨나 라는 말씀을 나누었는데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아픈 사람도 같이 주님을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어느 곳에 가서 특강을 해도 사례비를 받아 본적이 없는데 버스가 떠나려는데 한 분이 나를 주라고 무엇을 건넸습니다. 비닐봉투에는 누룽지가 담겨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그런 선물을 받아서 어제 끓여 먹었습니다. 그분들의 애환을 마음에 느껴보면서 말입니다. 아주 구수한 누룽지여서 남편에게도 좀 나누어 주었습니다.
인도에서 한센환자들에게 외과의사로써 처음 수술을 연구해서 불구를 멈추게 한 영국인이면서 하나님의 사람인 폴브랜드를 추억해 봅니다. 그가 출장가고 없을 때 한센환자라고 버스나 공공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가 없어서 걸어온 환자가 있었습니다. 몇몇 칠을 걸어왔는데 마침 폴브랜드는 출타 중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야 돌아오는데 폴브랜드의 부인인 안과의사는 자신의 집에 그 환자를 재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밤에 도착한 폴브랜드는 여행의 여독도 생각하지 않고 그의 손을 살펴보고 위로하며 그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수술후 그는 새 인생을 살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고백하였지만 그도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나는 한센스병에 걸린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병이 아니었으면 폴브랜드를 만날수 없었을것이고 그랬다면 그속에 있는 예수님을 몰랐을터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