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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를 미워한 바보

마마킴||조회 7,123

천사를 미워한 바보

[마22:39]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이야기는 이길재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나는 가을이 되면 가슴 저리게 뉘우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학생을 미워 헸던 잘못입니다. 성경에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고 했는데 그러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미워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1971 년 2 월이었습니다.  나는 인천에 있는 작은 특수시설인 경기맹학교에 부임했습니다. 학생은 백여 명 남짓했고, 초등학교 여섯 반, 중학교 세 반에 선생님은 열 명쯤 넘게 근무하는 학교였습니다.  처음에 맡은 업무는 교무에 담임도 하고 청소도 하고 고아원의 일도 함께 하는 자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학교는 낮에는 학생을 가르치고 밤에는 정부보조로 숙식문제를 해결하는 고아원 시설로 인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처음 부임해서 만난 것은 모두가 앞 못 보는 맹 학생들과 귀여운 네 천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운이, 수봉이, 근철이, 석봉이였습니다.  왜 성이 없느냐고 물으면 모두가 천사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학교에 적은 있어도 수업은 받지 않았고 기숙사에서 놀기도 하다 때가 되면 식사를 하지만 누구도 함께 놀아주지 않았습니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지능이 뒤진 순진한 아이들이었습니다.  나는 이들을 천사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세운이는 말을 못합니다.  울지도 못합니다.  배고파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자폐증이 심한 아이였습니다.  수봉이는 엄마가 앞을 보는 아이들이 있는 고아원 보모로 있을 때 눈먼 아들을 그들 틈에두고 고아원 일을 하고 있어 앞을 보는 정상 아이들에게 시달림을 받아 사람들을 두려워 합니다.  공부도 할 수가 없습니다.  지능이 서너 살쯤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근철이는 뇌막염을 앓아  눈이 곧 떨어질 듯 불거져 나왔고 머리만 크고 멍한 아이였습니다.  석봉이는 부모가 사회보조 시설에 버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맹학교에 오게 되었는데 서른 살이 넘어 보이지만 정확한 나이는 아무도 몰랐고 나이가 차면 고아원 시설을 떠나야 되지만 갈 곳이 없는 처지였습니다.

나는 이들과 시설이 허름한 방에서 함께 지내기로 했습니다.  누군가 돌봐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은 기숙사 식당에서 같이 식사도 하고 잠은 같이 자고 먹을 것이 생기면 가져다 주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나하나 가르쳤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나를 바보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던 가을날 저녁에 밖에서 먹고 온 음식이 잘못돼 식중독이 걸렸습니다.  먹은 것은 모두 토해내고 배는 쥐어 짜듯 아팠고 목도 타고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물이 마시고 싶었습니다.  옆에 자는 천사들을 깨웠습니다.  물 좀 가져 달라고 했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에 직원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실려가 치료를 받을 때까지 아무 도움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날이 지났습니다.  서운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숙사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학생이 감기증세로 병원에 입원하면 죽는 것입니다.  봉순 이와 용구가 죽었습니다.  세 번째 학생이 같은 증세로 인천 기독병원 응급실로 실려갔습니다.  환자들에게 X 레이를 찍고 목안의 가래도 제거해 주고 열심히 의료진들이 움직이는 그 찰나에 전기가 나갔습니다.  가래를 제거하던 기계가 멈췄습니다.  간호사가 달려왔습니다.  고운 모습으로 눈먼 환자를 극진히 보살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는 완쾌되어 퇴원을 했습니다. 

그 후로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게 물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천사들을 미워했던 나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어 있는 아이보다 살아있는 생명이 더 귀하다는 깨달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을 바로 볼수가 있게 되었고 그 길을 계속 갈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에게 이로울 때만 남을 사랑하면 참 사랑이 아닙니다.  한 순간도 나 같은 바보가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나도 한 장애청년에게 잘못한 것이 있는데 잘못을 만회할 방법이 없습니다.  전에 역촌동에 있는 결핵환자들이 있는 서대문 시립병원을 위문 다닐 적에 일입니다.  그 당시 몇 백 명의 결핵환자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노숙자였다가 결핵이 걸려서 들어온 환자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이십 대 초반인 한 명구라는 정신 장애가 있으면서 결핵이 걸린 청년이 있었습니다.  명구는 나를 보면 늘 “엄마”라고 부르며 우리 집에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서 다음에 올때는 무엇을 가져 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는 자기 돈 이십만 원을 내게 맡겨 놓고 자기가 퇴원하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맡아 있는데 아무 연락 없이 명구가 퇴원하여 간 것입니다.  나는 간 곳을 알 수가 없고 그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랜 세월을 기다렸습니다.  하루는 섬에 사는 목사님이라고 하면서 명구가 내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고 이십만 원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명구와 살고 있는다고 하기에 그 돈을 전해달라고 하니 우리 쉼터로 보내고 싶다고 하며 그때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 몇 년 동안 아무 연락이 없어서 명구 돈을 전해 주지 못해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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