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굿간에서
[눅2:7]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우리는 성탄절이 되면 의례히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연극을 보게 됩니다. 말구유에 누인 애기가 있고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이 옆에 있는 광경입니다. 언제나 그 연극을 보면 마치 낭만적인 어떤 장소로 보입니다. 그곳이 옆에 말이 있고 냄새 나는 배설물이 있는 그러한 곳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이 연극을 관람하게 됩니다. 게다가 동방박사가 선물을 들고 와서 선물까지 드리는 장면을 보면 마치 근사한 곳에 있는 왕자에게 선물을 드리는 것 같이 별 생각 없이 예수님의 탄생을 바라봅니다.
세상 모든 아기는 전쟁터나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아무리 가난해도 말구유에서 태어나게 하지는 않습니다. 옆에 말이 있으면서 배설도 해 놓았을 터이니 냄새가 오직 했을까요? 하늘 보좌를 버리고 말구유에 누우셨으니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분이 어떻게 그런 장소를 택하여서 이 세상에 오셨을까 처음으로 깊히 묵상해 본 날이었습니다.
주님의 고난과 생애를 묵상해 보면서 마침 오늘은 우리 어머니가 대변을 여러 번 봐서 옷에까지 무쳤습니다. 한 열흘 이상은 대소변을 정상적으로 못 보아서 관장이나 소변을 뽑는 일을 했는데 어제 부터는 하나님은혜로 정상적으로 대소변을 보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우리 어머니가 기저귀를 빼서 방으로 집어 던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치우면서 변이 묻은 옷을 빨면서 예수님을 묵상해 보게 되었습니다. 가장 낮고 천한 곳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주님은 탄생부터 겸손 그 자체였다는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가장 크고 좋은 방에 누워계시고 채광이나 통풍이 잘되는 방인데도 한번씩 배설을 하면 냄새가 장난이 아닙니다. 그런 일을 누구에게 돈을 주고 해 달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대변이 묻은 기저귀를 치우고 옷을 빨면서 주님을 생각하니 깊은 감동으로 혼자 찬송 부르고 은혜 받으면서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일부러 가장 낮은 곳을 택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목수의 아들의 신분으로 이 세상에서 사셨기에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은 항상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가구 공장을 모두 ‘나무공장’ 이라고 부릅니다. 그들 표현대로 하면 예수님은 “나무공장”에서 일하신 것입니다.
머리 둘 데가 없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보면 노숙자처럼 지내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이들에게 사랑을 전해 주신 주님이십니다. 이미 하나님이 만든 축복의 에덴동산을 떠난 우리들 모두가 상처 받고 상처 주고 절망스러워 하기에 그런 모습으로 오셔야 가까이 다가 오실 수가 있지 않았을까요?
너무 잘생기고 많이 배우고 높은 사람에게 우리 보통 사람들은 선뜻 다가가기가 어렵습니다. 현실은 대다수가 보통사람이라는것입니다.
집집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걸어놓은 잘 생긴 서양사람의 모습인 예수님의 모습은 진짜 모습이 아닙니다. 성경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53:2]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젊어 보이고 싶어 안달인데 예수님의 모습은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셨습니다.
[요8:57]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삼십대의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눈에는 오십이 다 되어가는 외모로 본 것이 틀림이 없는 귀절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묵상하니 나도 배설물을 치우고 딱고 하는 일을 하면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라는 말씀을 머리로만 알던 것을 아주 조금씩 배워보는 시간입니다. 정말 나는 잘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오늘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