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날의 기도 (3)
[시118:5]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주께서 행하신 일과 동행하셨던 일을 적어가노라니 너무 많아서 다 기록할 수가 없을 정도 입니다.
우리 가족은 1995 년부터 3 년 동안 모슬림 나라 말레이시아에서 살았습니다. 그 시간의 경험은 모슬림들을 선교하는데 정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처음 도착한지 얼마 안되어서 그곳에서 정글에 살고 있는 원주민 선교를 하는 선교사님을 따라 일주일에 한번씩 정글에 갔었습니다. 그곳 거리는 정확히 모르지만 서울 대전 정도의 거리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고속도로가 펼쳐져 있는 길이 아니고 3 m 정도 되는 뱀도 길에서 볼수 있는 정글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의 특징은 화장실이 없는 마을이었습니다. 모두 자연속에서 해결을 하는 그야말로 원시적으로 사는 곳이었습니다. 늘 35 도를 웃도는 더위속에서 이곳을 가는 날은 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화장실 가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였지요. 약 100 가구 정도 되는 곳이었는데 우리 일행은 그곳에 어린이들의 머리를 감겨주고 머리도 잘라주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왔습니다.
모슬림 나라에서는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서 하루는 종교 결찰이 와서 우리 일행 모두를 심문했습니다. 그때 한국인 4 명이 갔었는데 그 일로 두명은 그 나라를 떠나버렸고 한명은 한국으로 귀국하였다가 이름을 스펠링을 바꾸어서 다시 입국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여권으로 들어온것입니다. 나는 그냥 있다가 주재원 가족으로 비자 연장하는 시기가 되었을 때 남편과 딸은 비자 연장을 해주고 나는 한달내에 출국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저희 남편이 이민국에 가서 항의를 하니까 그 해답이 한달에서 두주 내에 출국하라는 통지가 왔습니다.
갑자기 우리 단란한 식구는 이산가족이 되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 딸은 고등학생으로 집안 살림은 엄마가 알아서 하다가 우리 가족은 어찌해야 모를 상황이 되었습니다.
동말레이시아에서 온 교인들이 모이는 교회에서 나는 청년들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나를 상당히 안타까운 마음으로 환송해 준다고 모였습니다. 손에 손에 작은 선물을 사들고 다시 못볼 것을 생각하며 비통한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청년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아주 떠나는 것이 아니고 삼주 후에 다시 돌아올 터이니 나중에 진짜 이 나라를 떠날 때 선물을 주세요”
“네, 다시 돌아올 것을 믿어요” 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표정은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수 있겠느냐고 얼굴에 써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삼주 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돌려 보낼 것을 확신했습니다. 물론 가족과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이 슬픈 일이기는 했지만 나는 당시에 말레이시아 언어로 성경공보 교재를 번역하는 중이었고 아직 인쇄를 마감하지 않은 상태얐습니다. 성경공부 교재가 그 나라 언어로 없는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추방당하게 두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또 삼주라고 잡은 것은 저의 부모님이 삼주가 지나면 그낭 방문한 것이 아니고 무슨일이 있나 염려 할것이기에 삼주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추방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딸만 두고 떠나는 마음이 착착하기도 했지만 한편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두주가 지나고 삼주째 중반이 되어도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주 목요일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 이름이 불랙리스트에서 다시 들어갈수 있도록 풀렸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에게 약속한 삼주째 다시 말레이시아로 돌아갔습니다. 청년들과 현지 교회 목사님 모두 모여서 내게 물었습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 돌아왔느냐고요. 혹시 여권을 바꾸었는지 아니면 이민국에 돈을 주고 풀려났는지 모두 궁금해 했습니다. 나는 그런 방법을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언제나 정도를 걸으려고 노력하고 살아왔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풀려났다고 하니 모슬림나라에서 크리스천으로 사는 두려움에 있던 청년들은 모두 믿음이 올라가는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게는 베드로가 감옥에서 풀려나는 성경의 기록을 체험해 보는 신나는 기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