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월 1 일 우리는 전주 바울교회 철야예배(www.paulchurch.com 은혜의 밤)를 참석하고 6 월 2 일에는 전주 안디옥교회 그리고 김제 금산 ㄱ 자 교회를 다녀왔습니다. 대형 버스를 빌려 30 명이 대 이동을 하여 정말 즐겁고 유익한 여행을 했습니다.
전주바울교회
이곳에서 저는 가슴전도법을 전하고 박정화 전도사님은 간증을 했습니다. 이준영목사님은 1988 년 중앙성결교회 대학부 제자인 나의 꿈나무 중에 한명인데 19 년이 지나니까 어린 새싹은 큰 나무가 되어서 그 교회에 청년부 및 교육담당목사님인데 청년부를 일으켜서 청년부 예배 참석 인원만 350 명이 되었고 목사님을 통하여 또 다른 사역자가 이미 많이 헌신 되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사람을 키우는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다시 생각했습니다.
박정화전도사님의 간증은 복음의 위대함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테러를 당하여 얼굴에 7 cm 의 흉터와 마음에 상처가 그렇게 밝고 탈렌트가 넘치는 한 사람을 다시 회복시키는 간증은 모든 관중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을 다시 확인시키는 시간이었습니다.
전주 안디옥교회 (일명 깡통교회)
교회 건축을 해야 부흥한다는 신화를 깨고 교회 재정의 60% 이상을 해외 선교사 파송을 하여 이동희목사님 자녀들부터 아프카니스탄을 비롯하여 300 명 이상의 선교사를 후원하는 깡통교회의 방문은 우리모두에게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미 우리 모두 깡통교회 이야기 책을 읽고 배울 준비를 하고 그곳에 도착하니 우리가 책에서 읽은것 이상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가장 감동 깊은 장소는 엘리야 재단이었습니다. 그곳은 릴레이 기도를 하는 작은 기도방인데 이곳은 설날이나 추석 연휴 상관없이 24 시간 기도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 장소가 바로 오늘의 안디옥 교회 를 만든 곳이었습니다. 장애인들을 위한 비누공장과 찻집운영을 할수 있는 공간은 우리에게 한국에도 이러한 모델적인 교회가 있다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김제 금산 ㄱ 자 교회
김제 지역이 부호였던 조덕삼장로님은 성격이 호방하고 인심이 후하여 자나가는 나그네도 하룻밤을 재우며 배불리 먹여주었습니다. 조장로님은 1904 년 금산리를 들리는 Tate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으며 자기집 사랑채에서 집회를 시작, 마침내 사재를 헌금하여 지금의 ㄱ 자 교회당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장로님은 자기 집 마부로 일하던 이자익 청년을 선배 장로로, 더 나아가서 그를 평양신학교로 공부하게 후원하여 3 번이나 한국 단일교단의 총회장을 지내는 훌륭한 교계 지도자로 되게 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족교육을 휘해 금산교회에 유광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유광학교는 후에 한글과 우리나라 역사를 가르쳤으며, 3.1 운동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조장로님이 별세하기 전에 찬송가 525 장 (주믿는 형제들)을 4 절까지 부르고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를 전도한 Tate 선교사는 전라도 일원에 50 개나 넘는 교회를 세웠고 예수병원 창시자인 잉골드와 결혼하여 선교를 하였습니다.
자국으로 돌아가면 개척자역활을 해야하는 우리 학생들에게 참으로 감동적인 교회였습니다.
에디의 사고
할렐루야 를 연신 외치던 이란 알리는 여행중 너무 즐거워 하였는데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샤워를 하다가 넘어져서 세면대에 부딪치면서 이가 부러지면서 입술에 박히고 피가 흐리고 입술은 찢어졌습니다. 급히 예수 병원에 갔는데 성형외과 의사가 없다고 하여 전북대 병원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두시간이나 응급실에서 성형외과 의사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데 곧 온다고 소식만 전하고 의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계속 피를 가제로 지혈하고 있었는데 예수 병원에서 입술을 꽤매지 않으면 입술이 더 벌어지고 위험하다고 하였지만 의사가 오지 않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꽤매지 않고 저절로 붙게 만드셨습니다. 그 다음날 약간의 딱지만 입술에서 보이지 멀쩡 하였습니다. 이 사고로 에디는 다시한번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각나라 언어로 노래를 부르며 하하 호호 즐거운 웃음이 소망구 행복동 사람들에게 넘쳐 났습니다.